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화목한 가정은 행복의 으뜸

입력일 2011-01-26 수정일 2011-01-26 발행일 2011-01-30 제 273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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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부모·형제 서로 이해하며 더 화목하게 만드세요”
고전에서 제가 좋아하는 글 중에 ‘맹자의 군자삼락’이 있습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지요.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仰不愧於天 不俯 於人 二樂也), 득천하영재이 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而 敎育之 三樂也).

‘부모가 함께 계시고 형제가 무고함이 제 일락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제 이락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킴이 제 삼락이라.’

국어 시간을 통해 이 글을 처음 대하고 가슴이 먹먹하도록 공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을 첫째 조건으로 꼽았음이 좋았고, 저로서는 이미 행복의 첫째 조건을 박탈당했음에 가슴이 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무고’라도 지키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내 건강이 그들의 건강이요,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요, 내 기쁨이 그들의 기쁨이요, 그들의 가난이 내 가난이요… 등등을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에는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고, 커서는 도울 일이 있으면 서둘러 도우며 형제우애를 다졌습니다. 언니 오빠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저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뒤늦게 그 으뜸가는 행복을 스스로 파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함으로써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덩달아 자기도 편치 않게 지내는 사람들. 그 부모야말로 저처럼 조실부모한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던 존재임을 그들은 모릅니다. 성경에서도 효도는 인간을 향한 첫 가르침으로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러면 너는 주 하느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탈출 20, 12) 십계명 중 4계명입니다. 3계명까지는 하느님께 대한 항목이요 뒤이어 바로 부모가 언급된 것이지요. 게다가 집회서 3장에는 16개 절 모두 부모에 대한 의무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12절) “아버지를 버리는 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와 같고, 자기 어머니를 화나게 하는 자는 주님께 저주를 받는다.”(16절)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 공경의 예행연습입니다. 부모는 하느님이 세워주신 대리자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가장 간절히 기도해 주실 분도 부모이고, 집 나간 자녀가 돌아오면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실 분도 부모입니다.

형제도 그렇습니다.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라고 태어난 사람이다.”(잠언 17, 17) 얼마나 명쾌한 말씀입니까? 잘 사는 형제가 못 사는 형제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 형제는 세상의 외동 자녀가 최고로 부러워하는 존재입니다. 한 뿌리에서 태어난 동기간을 돌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멀리 있는 이웃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러면서 이웃으로 눈길을 돌리는 게 올바른 사랑의 확장이 아닐까요. 대부분 욕심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하며 갈등을 겪게 되는 듯합니다.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용서하지 못할 일도 없으련만.

형제끼리 불목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불효인가를 모릅니다. 이쪽도 내 자식이요, 저쪽도 내 자식이라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애간장이 녹는 부모의 마음을 그들은 모릅니다. 아무리 밉고 상대하기 싫은 형제라도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보다 먼저 걱정해 줄 존재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 자식 간, 또는 형제 간, 어떤 이유로건 소원했던 가족들이 신묘년 설을 맞아 토끼처럼 깡충깡충 달려가 아름다운 화해의 시간을 갖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