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61. 성녀 우르술라 Ⅱ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
입력일 2011-01-25 수정일 2011-01-25 발행일 2011-01-30 제 273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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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순례
3년간 로마 순례 떠난 우르술라와 처녀들
쾰른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는 모습 그려
멀리 보이는 대성당 앞 주택 창문의 천사
성녀가 순례 후 쾰른에서 순교할 것 예고
한스 멤링, 쾰른에 도착한 우르술라 일행, 1489, 캔버스에 유채, 37.5×25.5 cm, 브뤼게, 한스 멤링 미술관.
성녀 우르술라에 관한 이야기는 400년 경 쾰른에서 발견된 한 돌에 새겨진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록은 클레마티우스라는 사람이 쾰른에서 그 지역의 몇몇 처녀들에게 봉헌된 교회를 복원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처녀들의 이름이나 연대 등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이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셈이다.

이후 9세기 경부터 이들이 영국 출신으로 쾰른에 왔으며 막시미아누스 시절 박해를 받은 자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이들 순교자들이 11,000명으로 불어나게 된 것은 10세기에 이르러서이다. ‘XI MV’를 ‘11명의 동정 순교자’로 번역해야 하는데 ‘11,000명의 동정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즉 M을 순교(Martyres)의 약자가 아니라 1천(Milla)의 약자로 번역한 데서 온 오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천 명의 처녀 순교자이야기는 전설로 굳혀졌으며, 13세기 말에 쓰여진 〈황금전설〉에서 흥미 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황금전설이 전하는 우르술라 이야기는 이 성녀에 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국의 브레타냐에 마우로라 불리는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는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름다움, 지혜, 정직함에서 무엇 하나 빠지는게 없는 우르술라라는 딸이 있었다. 잉글랜드는 브레타냐보다 더 강한 나라였는데 이 나라의 왕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로서 자신의 아들을 우르술라와 혼인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대사를 통해 온갖 보석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면서 자녀들끼리 혼사를 맺을 뜻을 밝혔다. 그는 이 혼인이 성사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도 가했다.

브레타냐의 왕은 딸을 비신자의 아들과 혼인시킨다는 것이 영 맘에 내키지 않았으나 그리할 경우 닥쳐올 위협도 걱정되었다. 우르술라는 부친에게 결혼을 승낙하되 그녀가 3년 동안의 말미를 얻어 열 명의 처녀들과 로마에 가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조건을 내걸으라 하였다. 하지만 황금전설에서는 이들 열 명의 처녀들이 각각 천 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가서 모두 11,000명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사이 남편감은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우르술라는 약혼자가 세례를 받지 않으면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도 되니 손해 볼 일이 없었고, 만일 세례를 받는다면 동행한 처녀들과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바칠 결심이 서 있었다. 왕자는 이 조건을 기꺼이 수락했으며, 스스로 세례를 받았고, 부친에게 우르술라의 청을 들어줄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브레타냐에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날 수많은 처녀들이 모여들었다. 배를 탄 이들을 바람은 쾰른으로 인도했다. 쾰른에서 밤에 주님의 천사가 우르술라에게 나타나서는 로마에 다녀 온 후 다시 쾰른에 들러 순교하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들 일행은 바젤을 거쳐 목적지인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 도착하자 브레타냐 출신의 교황 치리아쿠스가 마중을 나왔으며 교황은 세례 받지 않은 처녀들에게 모두 세례를 주고 자신도 이후 이들 처녀들과 함께 쾰른에 간 후 거기서 순교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설이기 때문에 이들 이야기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뿐이다.

지난주에 소개한 한스 멤링의 〈성녀 우르술라의 성체함〉에는 황금전설에 근거한 성녀의 이야기를 모두 6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그려놓았다. 이 그림은 우르술라 일행이 배로 쾰른에 도착한 후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도시의 성문이 보이며 그 너머로 유명한 쾰른 대성당이 보인다. 성당 바로 앞의 한 주택 창문에 천사가 우르술라에게 나타나 쾰른에 돌아와 순교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