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성심디딤돌청소년쉼터 자립훈련매장 커피동물원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1-01-19 수정일 2011-01-19 발행일 2011-01-23 제 273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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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커피에 꿈도 한 스푼”
사회 등졌던 10대 소녀들 운영·자립기반 마련
인간관계·책임감 등 배우며 앞으로의 삶 준비
공정무역 커피·친환경 세제 사용 등 호응 얻어
‘커피동물원’에는 동물이 없다. 대신 미코 냥이 퓨마 비버 오리 참새 캥거루 토끼 등 동물 별명을 가진 소녀 바리스타가 있다.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기슨관 1층 휴게실 한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커피동물원은 성심수녀회가 운영하는 중장기 청소년 쉼터인 ‘디딤돌 쉼터’에서 자립훈련 매장으로 운영하는 커피점이다. 황량했던 휴게실은 소녀들의 등장으로 달콤한 커피향과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머무는 공간이 됐다. 10대 가출 소녀들은 20㎡ 공간의 작은 ‘동물원’에서 새로운 희망 일기를 쓰고 있다. 쓰딘 쓴 커피콩이 소녀들의 손을 거쳐 따뜻하고 달콤한 카페라테가 되듯, 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바꾸고 있는 커피동물원의 24시를 취재했다.

성심수녀회 청소년쉼터 자립훈련매장인 ‘커피동물원’에서 소녀들은 노동·돈·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 등을 배워간다.

#AM 8:30 커피동물원의 아침

테스트 샷을 시작으로 커피동물원에 커피향이 감돌기 시작할 즈음 첫 손님이 찾아온다.

“어서오세요. 커피동물원입니다.”

커피동물원은 가톨릭대학교(총장 박영식 신부)의 배려로 가톨릭대 성심교정 기슨관 1층에 2009년 9월 문을 연 디딤돌청소년쉼터 자립훈련매장이다. 쉼터 소장 최일심 수녀(성심수녀회)는 이곳이 “10대 소녀들이 미래를 향한 꿈을 찾고 자립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아메리카노를 먹어본 적도 없고, 커피전문점에 가 보지도 않았던 소녀들이 2년 동안 발로 뛰며 일군 커피점입니다. 커피전문점 및 커피 박물관을 탐방하고, 바리스타 과정도 수료했지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어요.”

커피동물원의 설립 목적은 단순한 커피 판매나 수익 사업이 아니다. 학업 중단이나 연령 미달을 이유로 불합리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 가출 소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자립준비를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이곳 ‘커피동물원’의 존재 이유다. 소녀들은 이곳에서 ‘노동’의 소중함, ‘돈’의 소중함, ‘인간관계의 소중함’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 등을 배워간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기간, 오픈 준비에서 마지막 청소 시간까지 모든 시간은 소녀들이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카푸치노 스팀 부탁드립니다!” “아이스 프램 하나 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손님에 서서히 활기를 띠어 가는 매장은 여덟 마리 소녀 동물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해진다.

#PM 1:00 소녀들의 분주한 오후

커피동물원이 가장 붐비는 점심시간이다.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동물원을 찾은 손님들을 소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로 맞는다. 이중 가장 맏언니인 가림(가명·21)양은 커피동물원의 창업계획서를 낸 창립멤버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와 주유소, 편의점, 공장 등을 전전하며 자립하려고 노력했던 가림양은 3개월 동안 월급도 못 받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방값이 밀려 고시원에서 쫓겨난 가림양은 결국 용기를 내 부모에게 전화를 했지만 ‘알아서 살라’는 답만 들었다. 왜 집을 나왔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지난날을 떠올리는 가림양의 눈가가 이미 촉촉이 젖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는 고프고, 갈 곳은 없고 정말 노숙을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때 아는 언니를 통해 이 곳 쉼터를 알게 됐어요.”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가림양은 성심디딤돌청소년쉼터에서 수녀와 사회복지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새 인생을 찾았다. 검정고시도 1등급으로 합격했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던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 커피만들기 등 팔방미인으로서의 새 삶을 살고 있는 가림양은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면서 환히 웃었다.

혜경(가명·20)양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와 방황하다 이곳으로 와 바리스타로 일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홀로 짊어지기엔 버거운 삶의 무게이지만, 다시 한 번 세상을 믿어보기로 한 혜경양은 “커피동물원에서 일하면서 어른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돈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어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대학에도 가고 제 앞길을 스스로 열어나가려고 해요.”

인천, 천안, 서울 등 쉼터를 떠돌며 방황하던 현숙(가명·19)양도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곳에 쉽게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현숙양은 이곳에서 막연히 생각해왔던 ‘회계사’의 꿈에 한발 다가섰다.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땄고, 대입 검정고시도 준비 중이다. 왕성한 호기심에 근성까지 붙은 것이다.

“왜 그랬는지 그땐 학교가 정말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이젠 달라졌어요. 회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 대학에도 가고 싶거든요.”

마음에 생채기 하나씩 숨겨두고 있는 소녀들의 이야기와 꿈이 담겼기 때문일까? 소녀들이 만든 커피를 받아든 손님들도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퓨마와 냥이, 비버와 참새, 미코와 오리, 토끼와 캥거루가 만든 커피로 행복한 오후의 풍경이다.

#PM 7:00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커피동물원은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동티모르산 커피를 쓰고, 재활용품과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는 등 ‘착한 가게’로 이름나 있다.
머신청소를 시작으로 마감을 준비하는 소녀들의 손이 가장 분주해지는 시간이다. 커피동물원이 청소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친환경’이다. 김선옥 사회복지사는 “생크림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고, 재활용을 철저히 하는 등 환경을 살리기 위해 소소한 것까지 실천을 하고 있다”면서 “공정무역과 친환경적 운영, 십대여성들의 자립이 커피동물원의 세 가지 특성”이라고 했다. 가톨릭대학교 내에서도 커피동물원은 ‘착한 가게’로 이름나 있다.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동티모르산 커피를 쓴다는 점, 개인텀블러나 머그컵을 가져올 경우 할인을 해 준다는 점, 재활용품을 이용해 알림판을 만드는 등 친환경적 인테리어를 손수 마련한다는 점 등은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소녀들의 착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날은 잊고, 미래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잖아요. 그 누구보다도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건강한 어른이 될 거예요!”

7시40분. 커피동물원의 불이 꺼졌다. 소녀들이 커피동물원 마지막 손님인 기자에게 “오늘 만든 커피 중 가장 정성을 들인 것”이라면서 카페라테 한 잔을 내민다. 소녀들의 눈물과 아픈 성장기, 그리고 꿈과 희망이 담긴 그 커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