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13명 할머니 모여 사는 ‘마리아의 집’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1-01-12 수정일 2011-01-12 발행일 2011-01-16 제 273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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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며 여생 함께하는 ‘고향집’
10년간 할머니 딸로 살아온 김경자 수녀
아픈 마음 보듬고 ‘가족애’ 나누며 살아
마지막까지 함께할 따뜻한 ‘둥지’로 가꿔
김경자 수녀와 마리아의 집 할머니들이 다정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며 오후의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0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535만7천 명으로, 2000년의 339만5천 명에 비해 200만 명가량 늘었다. 2010년 독거노인가구수도 102만1천8가구로, 2000년의 54만3천522가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65세 이상 인구 5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인 셈이다.

의지할 곳도, 마음 붙일 곳도 없는 독거노인 13명이 모여 둥지를 틀었다. 7일,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에 자리 잡은 ‘마리아의 집’ 13명의 독거노인들과 그들을 모시고 있는 ‘딸’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김경자(마르셀리나)·최승희(성삼모니카) 수녀의 하루를 취재했다.

# AM 5:35 기도로 여는 아침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아침잠이 없는 마리아의 집 13명의 할머니들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 세수를 하고 빗질로 곱게 단장한 할머니들이 모여 앉은 곳은 기도방 안에 마련한 구유 앞. 어둔 새벽녘을 ‘기도’로 밝히며 할머니들은 아침을 연다. 천국을 그리는 할머니들의 기도는 간절하다.

“오 예수님 당신의 마지막 숨을 흠숭하오며, 저의 마지막 숨을 당신께서 받아들이시기를 간구하나이다….”

8시 30분, 아침식사를 마친 할머니들은 승합차에 오른다. 근처에 있는 하우현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다.

“우리 할머니들은 수도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눈 뜨자마자 기도하고 밥 먹자마자 미사를 봉헌하고 오후에도, 잠들기 전에도 항상 함께 모여 기도하지요.”

10년간 할머니들의 딸 노릇을 해온 김경자 수녀는 할머니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기도’라고 귀띔한다.

하우현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김경자 수녀와 최승희 수녀, 김민자(소화데레사) 할머니의 모습. 마리아의 집 할머니들은 늘 기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 PM 12:00 점심은 배추된장국

미사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마리아의 집 거실 한가득 햇살이 넘친다. 은은한 향이 감도는 집안 곳곳에는 여느 가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신문지를 덮어 먼지가 쌓이지 않게 벽 한쪽에 잘 세워둔 밥상, ‘365일 우리집 식단’ 요리책, 컵과 그릇을 꼼꼼히 정리해둔 찬장이 그렇다. 김 수녀와 최승희 수녀는 요리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미사 강론이 길어져, 점심식사 준비가 늦어졌어요. 할머니들 기다리시는데….”

오늘의 메뉴는 삼치조림과 배추된장국. 두 수녀를 돕는 백순영(안나·84), 김민자(소화데레사·70), 박묘숙(세실리아·70) 할머니의 손길도 분주하다.

12시 40분,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거실에 앉아 일광욕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들이 느린 걸음으로 모여든다. 소박한 식단이지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서로가 있기에 그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다.

# PM 1:30 생활인으로서의 삶

점심식사를 끝낸 할머니들이 분주해졌다. 한 할머니가 청소기를 돌리자, 다른 할머니는 그 뒤를 쫓아다니며 걸레질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우리가 하고 있어. 청소 정도야 거뜬히 할 수 있지.”

이곳 할머니들은 틈나는 대로 수녀들의 일손을 돕고 있다. 70~90세의 노령이지만, ‘생활인’으로서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이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모두 할머니들의 부지런함 때문입니다.”

지금은 혼자가 됐지만 한때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할머니들은 평생 몸에 밴 습관처럼 자신의 보금자리를 손수 치운다.

# PM 3:00 싫으면 시집가라!

휴식 시간. “커피를 마시는 게 싫다”는 김경자(소화데레사) 할머니의 말에 황남숙(베로니카) 할머니가 “싫으면 시집가라!”고 핀잔을 주자 웃음꽃이 핀다.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함께 앓고 있는 황 베로니카 할머니. 혼자 살았더라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황 할머니는 이곳 마리아의 집에서 따듯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걸음조차 걷지 못했던 김 소화데레사 할머니도 건강을 회복해 지금은 마리아의 집 핵심 노동인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할머니들의 뒤에는 10년간 묵묵히 딸 역할을 해 온 김경자 수녀가 있다. 입맛도 성격도 각양각색인 할머니들을 때로는 어머니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받들고 보살피며 알뜰히 살림을 꾸려온 김 수녀는 할머니들의 마음까지도 정성스레 돌본다.

“10년전 이곳에 와 처음 2~3년간은 청소를 열심히 했어요. 그 다음 3~4년간은 할머니들의 차림새를 맑고 깨끗하게 했지요. 여느 가정집의 할머니처럼 보이도록, 절대 유니폼은 입혀드리지 않아요. 마음 아픈 할머니들이 양로원 할머니라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히 마음을 쓰고 있어요.”

# PM 4:30 다시 구유 앞에 엎드려

낮잠을 자기도, 담소를 나누기도, 화초를 가꾸기도 하던 할머니들이 오후 4시 30분 다시 구유 앞에 모였다. 묵주기도로 시작한 할머니들의 기도는 길고 느리게 이어졌다. 태어난 곳도 살아온 곳도 제각각이지만 이제 여생을 이곳에서 함께 보내며 못다 나눈 사랑을 서로에게 베풀고 있는 할머니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김 수녀는 말한다.

“한 분 한 분 모두 드라마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어요. 저렇게 하루 6시간씩 함께 기도하고,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들은 서로의 장례를 치러주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합니다. 할머니들의 마지막 여정이 이곳이라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 PM 6:00 내 고향

아직 뒷정리를 채 마치지 못한 김 수녀와 최 수녀는 설거지를 하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있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주방에선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 여느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녁시간의 아늑한 풍경속에 열 세 명의 할머니들이 TV 앞에 둘러 앉아 ‘6시 내고향’을 본다. 할머니들은 무릎을 치며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할머니는 따듯한 아랫목에 등을 대고 누워 잠이 들기도 하고, 어느 할머니는 조용히 기도방으로 들어가 묵상을 한다.

따듯한 아랫목과 가족의 정,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마리아의 집은 할머니들의 마지막 ‘내 고향’이었다.

※문의 031-426-3886 마리아의 집

백순영(안나) 할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다. 이 집에서 산 지 가장 오래된 안나 할머니는 청소에도 베테랑이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