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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음식기행]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독일식 햄 ‘겔브 부어스트’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0-12-29 수정일 2010-12-29 발행일 2011-01-02 제 272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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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부터 포장까지 ‘독일 전통’ 고수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는 이들이 누굴까? 단연 수도자들이다. 이들은 부모가 자식을 위하듯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 최근 급변하는 사회문화 안에서 영적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이러한 수도자들의 모습에 더욱 끌려 수도회 혹은 피정의 집 등을 찾는데 열심이다. 이에 더해 수도원을 방문해본 이들은 한결같이 음식맛이 너무 좋다고 입을 모은다.

늘 검소함과 절제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이 평소 먹는 먹을거리가 궁금하다. ‘수도원 음식기행’은 하느님을 향한 길을 닦는 이들 수도자들의 일상적인 밥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친환경적이고 소박한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밥상들이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다지며, 창조영성에 부합하는 살림살이법을 습득하는 기회로도 유용할듯하다.

이번 호에서는 연말이나 신년에 더욱 풍성히 즐기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특식을 소개한다. 예수성탄대축일이나 부활대축일 즈음, 수도원 전례에 참여한 일반인들에게도 양껏 제공되는 독일식 햄인 겔브 부어스트다.

수도회 내에서는 ‘순대’로 불리는 독일식 햄 겔브 부어스트(Gelb Wurst).
식사 중에는 대침묵. 한쪽에서는 영적독서를 낭독하는 소리가 쉼없이 이어진다. 의외로 식사하면서 듣는 성경말씀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식사 중에 침묵하며 영적독서를 듣는 것은 베네딕도회의 독특한 수도생활 문화다. 귀로는 영적 음식을 먹고, 입으로는 깨끗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는 이 식사 시간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절제의 덕을 함양하는 데에도 모범이다.

물론 모든 식사 시간에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날엔 더욱 흥겨운 식사가 이어진다.

지난 예수성탄대축일 전야 미사 후,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과 서울 장충동 분도 피정의 집 등에서도 왁자지껄 잔치가 펼쳐졌다. 수도회는 해마다 성탄 전야 미사에 참례한 이들에게 떡국과 함께 특식과 포도주 등을 곁들여 제공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먹을거리를 나누는 수도자들의 작은 정성이다.

이 식사 시간이면 단연 인기를 끄는 것은 일명 ‘순대’. 수도회 내에서는 누구나 순대라고 부르는 독일식 햄 겔브 부어스트(Gelb Wurst)다. 독일 등에서는 연말이면 햄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수도원 문 앞에 늘어선 경우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왜관수도원 순대’도 오래 전부터 맛이나 질적인 면에서 잘 알려졌다. 수도원에서 알음알음 맛을 본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서다. 물론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은 없다. 하지만 만드는 시기에 따라 양의 여유가 있을 때는, 개별적으로 요청하는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기도 하면서 더욱 잘 알려졌다.

이 순대에서는 일반적인 햄이 풍기는 느끼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부드럽고 깨끗한 맛이 일품이다.

얼리지 않은 생고기에 독일에서 공수한 양념을 섞어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전 세계 무슨 음식이든 양념이 올바로 들어가야 제 맛. 수도회에서는 국산 재료도 써봤지만 고유의 맛과는 너무 멀어져 계속 독일산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양념을 섞는 비율과 방법은 순대 특유의 맛을 내는 비법으로 철저한 장인정신을 필요로 한다. 순대를 감싸고 있는 포장필름도 독일에서 공수된 인체무해 특수 포장지다.

방부제에 대해서는 질문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당연히 첨가하지 않는다. 방부제가 필요할 만큼 보관할 양도 없다는 게 생산 전담 수사의 푸념 아닌 푸념이다.

이 순대는 독일 수사가 전통 방식대로 직접 만든다는 점에서도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수도회에서는 오랜 기간 길아돌프 수사가 포도주와 순대 생산 소임을 전담했었다. 그가 선종한 이후부터는 한국인 강대봉(알빈) 수사가 생산 책임을 맡고 있다. 이를 위해 강 수사는 독일 뮌스터 슈바르작 수도원에서 3년간 전통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현재 강 수사가 만들 수 있는 순대 종류는 다양하지만, 현재 수도회에서는 기계와 재료 등을 고려해 겔브 부어스트와 마늘과 허브 등을 첨가한 햄인 크노블라흐(Knoblauh) 두 가지에 주력한다.

만드는 시간은 짧아도 이틀은 걸린다. 생고기를 갈아 냉장숙성한 후 양념을 섞고 포장지에 넣어 삶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설핏 단순해 보일수도 있는 이 과정에는 꽤 만만찮은 힘이 들어간다.

강 수사는 “순대를 만드는 작업이 육체적으로는 고되지만, 우리 수도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맛있게 드셔주시는 음식이라 더욱 사명감을 갖고 만든다”며 “현대인들이 생활에 여유를 가지면서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데, 좋은 것을 먹기에 앞서 우선 나쁜 것을 덜 먹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