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39) 1932년 1월 1일~5월 29일

정리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0-12-08 수정일 2010-12-08 발행일 2010-12-12 제 272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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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방한 복음화 활동 격려
“외방전교회 총장 게브리앙 주교를 맞았다. 주교는 군중들을 축복하며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교우?학생들의 환영이 있었다.”

1932년의 시작은 대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많은 눈’으로 시작했다. 그는 이번 해에도 많은 일을 했다. 한국 최초의 공의회를 끝낸 후 「한국교회지도서」를 준비하고, 프랑스 두메르 대통령이 암살 당해 장례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총장인 게브리앙 주교가 한국을 방문, 환영식을 열었다.

1932년 1월 1일~4월 19일

일어나 보니 아주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대구에서는 이만한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2월 15일, 「교회지도서」(1931년 9월 13일부터 26일까지 14일간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 최초의 공의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듬해 홍콩 나자렛출판사에서 간행된 「한국교회지도서」를 말함)의 준비를 위한 회의가 9시에 시작됐다. 회의는 매일 9시에서 11시까지, 그리고 3시에서 5시까지 열릴 것이다. 목요일에는 오전 회의만 있고 주일은 쉬게 된다.

3월 19일, 여학교 학생들의 졸업장 수여를 주재했다. 다음날 게브리앙 주교(파리외방전교회 총장)의 방문 때문에 피정 일정이 바뀌게 되었음을 발표하도록 했다. 서울에 입학하는 소신학생들이 오늘 저녁 출발했다.

4월 19일, 교황사절로부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약간의 수정과 함께 공의회의 법규들을 승인하는 3월 15일자 로마의 교령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항과 날짜 등을 배열하면서 안심하고, 완전한 지도서의 준비를 계속하고 있는데, 교황사절은 가능하면 모든 것이 공의회 1주년이 되는 9월 26일 반포돼 의무적이 될 수 있도록 그 일을 내게 완전히 위임했다.

5월 7~29일

두메르 대통령(프랑스 제3공화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이때 러시아인 고르굴로프에게 저격당함)이 암살됐다. 뮈텔 주교와 함께 프랑스 영사관으로 조문을 하러 갔다.

12일, 서울 대성당(현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대성당)에서 두메르 대통령을 위한 예식이 있었다. 내가 창미사로 장례미사를 드렸고, 사도예절은 뮈텔 주교가 했다.

15일, 12시52분 우리는 기차에서 내리는 외방전교회 총장 게브리앙 주교와 그를 수행하고 온 후쿠오카 주교인 브르통 주교 등을 맞았다. 주교는 군중들을 축복하며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주교관에 와서 오찬을 가졌다. 3시, 게브리앙 주교는 대성당에서 성체거동을 드렸다. 교우들의 환영회와 학생들의 방문이 있었다. (중략)

29일, 모두들 왔다. 날씨도 좋았고 참례자도 대단히 많았다. 성체첨례(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의 거동을 위해 만들어진 장식이 내가 여기에서 이제껏 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워 성공적이었다. 동굴에서 주교장엄미사를 봉헌하고 신학교와 수녀원의 임시제대에서 멈추었다. 아마도 오늘 게브리앙 주교가 6월 8일 파리에 도착할 예정으로 하얼빈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탔을 것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게브리앙 주교 대구 방문 기념식(1932.5). 뜨거운 환영을 받는 가운데 게브리앙 주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과 신자들을 축복했다.
게브리앙 주교 방문 기념으로 성모당 앞에서 선교사들과 기념촬영.
서울 소신학교에 입학하는 대구 소신학교 학생들(1932.3).
대구 효성여자보통학교 졸업식(1932.3.19).

정리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