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38) 1931년 5월 21일~10월 19일

정리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0-12-01 수정일 2010-12-01 발행일 2010-12-05 제 272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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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식·공의회 치러
“텬쥬교회보가 조직이 강화되고, 나는 그것을 교구의 기관지로 인정했다. … 100주년 기념 축제날, 한국어로 강연을 했다.”

1931년은 드망즈 주교와 가톨릭신문 모두에게 뜻 깊은 해였다. 1927년 평신도의 손에서 창간된 가톨릭신문(당시 천주교회보)을 드망즈 주교가 정식 교구 기관지로 승격시킨 것이다.

또한 그는 교황사절인 무니 주교와 함께 서울에서 열린 공의회 개회식과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축제에도 참석한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모습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1년 5월 21일~7월 7일

가톨릭신문(당시 천주교회보) 1927년 4월 1일자 창간호.
아침에 자동차로 하양(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가서 성미카엘성당(현 대구대교구 하양성당)을 축복하고 성체거양을 한 뒤 4시30분에 돌아왔다.

6월 11일, 지난 3년간 중단됐던 나의 주교성성 20주년 기념일을 즐겁게 지냈다.

17일, 전주로 떠났다.

18일, 제주도의 두 신부와 앓고 있는 나주의 박 요한 신부를 제외하고, 감목대리구의 모든 신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성당(현 전주교구 전동성당)의 축복식을 가졌다. 오후에 몇몇 교우들에게 견진성사를 주고 논산 줄리앙 공베르 신부의 집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그의 형 안토니오 공베르 신부도 만났다.

19일, 대구에 돌아왔다.

7월 7일, ‘텬쥬교회보(천주교회보)’가 조직이 강화되고, 나는 그것을 교구의 기관지로 인정했다(1927년 4월 남방천주교청년회에서 펴낸 천주교회보(현 가톨릭신문)가 이때에 이르러 교구 기관지로 승격된 사실을 말한다. 창간 당시 천주교회보는 월간 4면으로 간행됐다).

9월 11일~10월 19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무세·줄리앙·김 스테파노 신부와 나는 교황사절 무니 주교가 타고 있는 특급열차에 올랐다. 서울역에 내려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12일, 오후 4시 공의회 회의실에서 예비회의가 열렸다.

13일, 9시 서울 대성당(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대성당)에서 장엄하게 공의회 개회식이 있었다.

14일, 주교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회의는 9시에서 11시까지, 그리고 3시에서 5시까지 속개된다.

26일, 100주년 기념(조선교구 설정) 축제. 주교회의의 장엄한 폐회식. 저녁 8시 시 공회당의 웅장한 청중 앞에서 나는 30분 동안 한국어로 강연을 했다. (중략)

10월 8일, 약속됐던 대로 교황사절이 5시29분 기차로 도착했다. 그는 넓은 역 광장에 사각형으로 집결한 교우 군중에게 축복하고, 나와 함께 지사의 자동차로 도로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까지 갔다. 선교사들이 다른 자동차로 그 뒤를 따랐고, 거기서부터 곧장 걸어서 주교관으로 왔다.

9일, 9시 신학교를 방문하고 3시 수녀원을 방문했다. 자유시간을 모두 공의회 서류의 긴요한 수정에 할애했다.

11일, 10시 대성당에서 성대한 교황사절 환영식과 내가 통역을 한 사절의 영어 연설, 사절의 교황축복과 성체거양이 있었다. 귀환길도 성대했고 이어 성당 앞에서 여러 단체들의 환영회가 있었다. (중략)

17일, 사절에게 공의회 서류들을 발송했다.

19일, 교구장들에게도 공의회 서류를 보냈다.

한국교회 공의회 마지막 날 장엄미사를 마치고 명동대성당에서 나오고 있는 주교단 행렬. 한국교회 공의회는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해 1931년 9월 13~26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개최된 주교회의로, 전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 교리서 편찬을 가결하는 등 한국교회 발전을 위한 협의가 이뤄졌다.
서울에서 열린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축하식(1931년 9월 26일).
1931년 5월 21일 봉헌식 당시의 하양성당(현 대구대교구 하양성당).
무니 교황사절의 대구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대구역 앞에 마중나온 신자들 모습(1931년 10월).

정리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