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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목발의 추억’/임양미 기자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0-11-24 수정일 2010-11-24 발행일 2010-11-28 제 272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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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해결사’ 도요안 신부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이른 봄이었다. 도요안 신부에 대해선 뜬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할 경우 당신이 짚고 다니시는 목발을 휘두르며 ‘불호령’을 내린다는 것이다. 모 일간지 여기자는 도 신부를 인터뷰 하다 호되게 혼나 눈물을 쏙 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수습을 갓 뗀 7개월 차 신입 기자가 만나기엔 ‘겁나는’ 존재였던 도요안 신부. 노동사목위원회 새 담당 기자로 첫 인사를 드리는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담당 기자라고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톨릭신문, 똑바로 하세요!’ 식은땀을 흘리는 기자를 향해 목발을 한 번 휘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이주노동사목 담당 기자로 취재를 하며 도 신부의 ‘불호령’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이주민과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정부 정책이 발표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힘없는 노동자를 대신해 체불임금 사업주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불호령을 내렸다.

신장암, 척추암, 임파선암을 앓으며 목발 없이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세상을 향한 그의 불호령은 끊이지 않았다.

선종 5일 전인 11월 17일, 도 신부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비협조적인 모 국가 대사관의 불합리한 행태를 고발해야 한다며 호통을 쳤다.

22일 월요일 저녁 7시, 도 신부의 갑작스런 선종 소식을 들었다. 순간, ‘가톨릭신문, 똑바로 하세요!’라며 호통치던 도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젠 누가 불의한 세상을 향해 불호령을 내리고 목발을 휘두를까?

벌써부터 도 신부의 불호령이 그리워진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