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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자 수녀의 중국 가톨릭 교회사] (41) 경자(庚子)교난 7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입력일 2010-11-05 수정일 2010-11-05 발행일 1999-11-07 제 217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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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고아원 학당 등 연이어 방화
배교시키려 산채로 생매장 토막 살인 자행
강서성에서도 광범위한 지역에서 반양교운동이 일어났다. 경자년 8월 5일 군중들이 경덕진(景德鎭)에 있는 교회에 방화하고 교인 수명을 살해하였는데 이 사건이 전성에 영향을 미쳐 요주(饒州), 무주(撫州), 남강(南康), 남창(南昌), 궤강, 남안(南安), 건창(建昌), 길안(吉安) 등지에 반양교운동이 일어나 교회가 파괴되고 교인이 살해되었으며 교인 주택 1600여 개소가 방화되었다. 공주에 1898년 성당을 세우고 예비자가 200여명 되었는데 경자교난 때 지방관이 신부 2명을 자기 집에 숨겨주고 호송하여 배를 태워 다른 지역으로 보내주었다. 8월 19일 의화단이 태화리(太和理) 성당을 공격하였는데 이곳은 교우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었다. 8월 31일 길안에 건축 중인 수도원, 경당, 고아원, 의원이 모두 방화되었다. 궤강성당은 외국 군함의 보호를 받았다. 절강성 제기에서 주민과 교인의 분쟁이 일어났는데 지방관이 병사를 파견하여 주민 4명을 체포하여 형구를 씌워 시중(示衆)을 하여 주민들이 분노하여 2000여명이 교회 건물을 파괴하였다. 경자교난 때 제기, 여요(余姚), 황암(黃岩), 녕해(寧海), 서안(瑞安), 평양(平陽), 수청(手靑), 옥환(玉環), 강산(江山), 상산(常山) 등지에서 교회가 파괴되었다.

직예성의 의화단 영향을 받아 호북성 남쪽지역에서 반양교운동이 심하게 일어났다. 천문현(天門縣)에서 주민들이 징을 쳐서 군중 2만여명을 모아 영국이 세운 교회에 방화하고 성당 및 개신교 교회를 파괴하였으며 양양(襄陽), 곡성(谷城) 등지에서는 교인들이 무장을 하고 군중과 투쟁하였다. 호남의 반양교투쟁은 호북성보다 더 격렬하였다. 5, 6일간 반교에 대한 벽보가 대량으로 나붙고 유언비어가 심하게 퍼져있었다. 형주(衡州)는 반교적인 도시로 유명한데 군중들이 7월 3일 영국이 세운 복음당(福音堂)에 방화하고 또 독일 신부 2명을 살해하였다. 형주 황사만(黃沙灣) 총당(總堂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성당)의 이태리 출신의 임덕고(任德高) 신부와 동철서(童哲西) 신부를 끌어내어 심하게 구타하자 임덕고 신부는 사망한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군중들은 동철서 신부를 부근 항구로 끌고 가서 화형시켜 살해하였다.

군중들은 성당과 육영당(고아원), 학당, 교우들은 주택에 방화하였다. 형양(衡陽), 청천(淸泉), 형산(衡山), 상영(常寧), 안인(安仁) 등지의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파괴되었다. 서양 선교사들이 변장을 하고 피신하다가 발각되어 살해되기도 하였다. 안휘성에서도 반양교투쟁이 일어났다. 휘주부(徽州府) 기문현(祁門縣)에서 7월에 사방에 반교 벽보가 붙고 유언비어가 퍼지자 교우들은 급히 피신하였다.

운남성의 곤명(崑明), 사종(師宗), 육량주(陸凉州), 진웅주(鎭雄州)의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모두 파괴되었다. 사천성에서도 반양교투쟁이 일어나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파괴되고 교우들을 살해하였다. 섬서성의 연자(燕子)에서 이태리 곽서덕(郭西德) 신부가 선교를 하였다. 연자 일대의 악질 토호 불량배들이 서양인의 세력에 의지하기 위해 입교를 하여 주민들을 억압하였다고 하며 곽서덕 신부는 수녀 성소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주민들은 그 지역에서 인심을 많이 잃은 사람들이 교우가 되어 주민들을 억압하고 또 신부가 수녀를 양성하는데 불만을 품은데다 의화단의 영향을 받아 7월 21일 성당을 파괴하고 곽서덕 신부를 대중 앞에 끌어내어 살해하고 강물에 던졌으며 교우도 4명을 살해했다. 유교적인 윤리에 의해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못하게 하는 것은 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의화단 난 때 교우들을 배교시키기 위해 토막살인을 하여 순교한 시신을 인계하는데 어떤 사람은 팔 하나만 남아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두골 반쪽이, 어떤 사람은 별발 꼬리만 남아 있었다고 하며 교우들을 산채로 생매장도 하였다. 14세된 소녀 하나가 산속으로 숨어다니다가 의화단에게 체포되었는데 배교를 하지 않자 코와 귀를 베고 양손을 절단하여 산상으로 끌고가 죽였는데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도 시신이 전혀 부패하지 않고 벌레도 덤비지 않았다고 한다. 전혀 비난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처럼 산 성인과 같이 착하고 순박한 교우가 많았으며 훌륭한 성직자도 많았다.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