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양자 수녀의 중국 가톨릭 교회사] (39) 경자(庚子)교난 5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입력일 2010-10-18 수정일 2010-10-18 발행일 1999-10-10 제 217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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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린이 7~8명 사망
마당 우물 등에 시신 수북
북당(北當)포위

북당에서는 무기를 가지고 자체 방위를 하기로 하였다. 북당에는 청년, 장년 남자가 900여명, 부녀와 어린이가 1800여명, 젊은 여자와 영아가 500여명, 신학생이 111명, 인애회 수녀 20명, 주교 2명, 라자리스트회 회원이 12명, 중국인 신부 2명, 성모소곤중회 수사 7명, 프랑스 수부(水夫) 30명, 이태리 해군 10명 등 3300여명이 있었으며 헨리 중위가 지휘를 맡았다. 당시 북당으로 피난 오는 교우들이 탄 마차와 나귀, 말로 거리를 메웠다 한다. 이때 북당측의 무기는 해군이 가지고 있는 총 40여 자루와 긴창 500여 자루가 전부였으며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북경 교구장 파비에르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6월 13일 의화단이 방화를 하여 사면에서 대화재가 일어나고 죽어가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공사관과 본당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6월 22일 의화단이 대포를 가지고 와서 발사하였다. 우리들은 성당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어린이들이 7-8명씩 사망하였다』고 한다.

의화단이 6월 15일 오후 7시부터 북당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교우들은 8월 15일까지 약 63일간 포위되어 있었다. 의화단이 화전을 쏘아 성당 남쪽 건물에 불이 났으며 6월 28일 북당 동쪽 건물에 기름을 끼얹고 방화하여 불이 났다. 3300여명이 먹는 양식도 어마어마 하였다. 외부와 단절이 되어있으므로 식량이 부족하여 타고 왔던 나귀와 말까지도 잡아먹었다. 천연두가 들어와 어린이가 계속 사망하였다. 7월 18일에는 25명이 사망하고 28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 지휘를 하던 헨리 중위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8월 12일 대포가 인자당에 떨어졌는데 직경이 4미터 깊이나 파졌다. 그동안 사망한 80여명의 시신을 그 구덩이에 넣고 매장하였다. 8월 15일 연합군이 들어와 의화단이 쫓겨갔는데 북당측의 사망자는 차반네 신부, 성모소곤중회 수사 2명, 수부 11명, 의화단과 싸우던 교우 38명, 어린이 120여명, 영아 51명, 부녀 80명, 모두 303명이 사망하엿다.

책란(柵欄)에서 살육

책란은 마태오 리치 신부가 1610년 서세했을 때 만역제(萬曆帝)가 묘지로 하사한 땅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묘지였는데 예수회가 중국에서 해산된 후 라자리스트회 선교사들의 묘지가 되었다.

역대 주교들의 책란 주위에 땅을 사들여 자선사업을 하였다. 1871년 북경교구장 델라브라스 주교는 책란에 성당을 건립하고 농장을 하였다. 1887년에는 의원을 건립하였으며 남자 어린이만 수용하는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싸르도우 주교는 고아원과 농장 관리를 성모소곤중회 수사들에게 맡겼다. 경자교난 당시 북경 교구장이 파비에르 주교였는데 파비에르 주교는 책란에 있는 수녀들을 북당으로 가라고 지시하고 아돈 수사는 고아 125명을 데리고 남당으로 갔다가 다시 책란으로 돌아왔다. 의화단은 책란에 들어와 교우들을 무릎 꿇게 하고교 칼로 목을 베어 살해하고 성당에 방화하였다.

연합군이 들어오고 의화단이 쫓겨간 후 마당에 시신이 쌓이고 화원에도 시신이 널려 있고 우물이 3개였는데 우울에도 시신이 쌓여 있었다. 우물은 직경이 1.5미터이고 깊이가 15미터이며 물이 2~3미터 고인다. 아돈 수사는 성당에서 고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책란에 시신이 예상외로 많은 것은 외부에서 살해한 시신을 책란에 갔다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책란에 선교사 묘가 200여좌 되었는데 의화단들이 부장품이 있는 줄 알고 묘를 파헤치고 관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없자 유해를 부셔 뿌렸다. 묘에 호석을 벽돌로 쌓았는데 벽돌까지 가져가 건축 자재로 팔았다고 한다. 묘비 조각이 아름다웠는데 무거워 가져잘 수 없으므로 의화단들이 묘비의 조각을 부수어 놓았다. 정복사(正福寺)도 선교사 묘지인데 성당과 사제관이 있었다. 의화단이 성당과 사제관을 파괴하고 교우들을 묘지 위에 세워 놓고 산 채로 소사시켰다. 8개국 연합군이 8월 14일 북경을 함락하고 부녀들을 유린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러시아 종군기자가 말하기를 『제왕의 도시 북경은 반은 불에 타고 파괴되었다. 연합군은 약탈을 심하게 하고 살육을 자행하여 시체가 산과 같이 쌓였다』고 하였다.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