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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교회가 간다] 아시아 교회 연대 그리고 복음화 향한 대장정 20. 중국 (상) 한국교회의 뿌리이자 모태

중국=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0-09-03 수정일 2010-09-03 발행일 1999-07-11 제 215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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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세계 교회의 중심 ‘시대’
아직도 전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
복음화의 대장정은 멀고도 험난
중국은 13억의 인구와 거대한 국토, 안정된 사회체제에 힘입어 정치 경제 지리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
세계인구의 22%에 달하는 13억 인구를 가진 나라, 지구상에서 물위로 드러난 육지 총면적의 15분의 1을 차지하고 한반도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963만㎢를 가진 거대한 나라 중국.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바라 보았을때 지구상 유일하게 윤곽이 드러나는 인공건조물로 알려진 만리장성의 나라 중국은 마치 만리장성이 지구의 중심에서 꿈틀거리듯 뭔가 표현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1979년 개혁, 개방정책을 실시한 중국은 연평균 10퍼센트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고 13억의 인구와 거대한 국토, 안정되 사회체제에 힘입어 중국은 정치, 경제, 지리적으로 점차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2년 대만과희 국교를 단절하면서까지 중국과 수교를 단행함으로써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급속한 협력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때를 맞추어 양국 교회간에도 과거 한국교회의 모태가 됐던 중국교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면서 교회 지도자단의 왕래는 물론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점차 교루가 확대돼 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전교의 자유는 없다」고 요약할 수 있는 종교정책을 표방해 나감으로써 현실적으로 중국을 향한 복음화의 대장정은 멀고도 험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더욱이 세계 교회는 「중국의 복음화가 곧 세계의 복음화」라고 할 만큼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며 특별히 한국교회에 중국복음화를 위한 사명을 강하게 부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95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가톨릭교회가 처음 1천년동안은 유럽에서, 그 다음 1천년은 광대한 복음화의 황금어장인 아시아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가톨릭교회의 장래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지만 복음화율이 3%에 불과한 아시아 교회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바 있다.

교황의 이러한 요청과 희망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특별히 교황은 1백만명의 신자에 불과한 중국의 복음화를 한국교회에 맡겨 놓고 있다.

중국 교회는 한국교회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중국의 천주교가 조선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초,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조선에 어느 정도의 종교자유가 주어질때까지 근 3백년간 선교사 파견과 조선신학생의 교육 등 당시 조선은 중국교회의 신세를 진 셈이다. 1831년을 중심으로 전기에는 북경교구가 후기에는 만주교회가 조선교회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다.

1601년부터 마테오 리치를 선두로 많은 예수회 학자들이 서양의 신학문과 함께 전교를 할 즈음, 해마다 북경을 왕래하던 조선 사절들과 학자들은 이에 호기심이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학자들은 북셩의 선교사들을 찾아가 학문적인 것 만이 아닌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을 통해 전달되기 시작한 교리책이 놀라운 위력을 발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1783년말 북경에 도착한 이승훈은 북당성당을 찾아가 영세를 청하고 1784년 2월초,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영세한뒤 많은 성서와 성물을 갖고 귀국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북경을 방문했던 윤유일(1795년 순교)은 북당에서 조건세례를 받고 북경주교로부터 주교좌 성당인 남당에서 견진과 함께 선교사로 파견을 받았다.

교황청이 1792년 조선교구를 북경주교에게 위임함에 따라 조선교구는 북경교구 주교좌성당인 남당에 직속됐으며 북경주교는 1794년 조선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주문모 신부를 파견했으나 1801년에 주신부는 순교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어 조선교회는 1831년 교구가 설정되면서 파리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고 1886년 한불 조약체결로 공식적인 천주교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한국교회는 중국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했다.

특히 김대건, 최양업 신부가 신학공부를 하고 사제품을 받은 것을 비롯 1845년 10월 12일 라파엘호를 차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익산 나바위에 도착할때까지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를 일군 텃밭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이처럼 중국교회가 없었다면 한국교회의 탄생은 어떤 모습으로 이뤄졋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중국은 우리 한국교회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대로 이젠 상황이 반전된지 오래. 북경교구장 부철산 주교가 지적한대로 700년 역사의 중국교회는 1949년 중국신정부(공산당정부)가 들어서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신중한 도움이 필요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9년동안 가톨릭은 완전히 중국공산당 정부의 통제하에 놓이고 중국교회들은 서구의 모교회로부터 단절됐으며 1966년 문화대혁명의 발생으로 일시에 암측에 빠져들고만 것이다.

겨우 개방정책이 표방되면서 79년경부터 종교정책이 변화를 보이면서 교회가 다시 문을 열게돼 현재까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활기를 띄게 된 것이다. 이제 막 기지개를 쳐고 부활하는 중국교회, 아직 많은 미흡한 점이 있긴하나 희망적인 조짐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에 세계교회의 눈길이 이곳으로 쏠리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도 과거 중국교회에 은혜를 입은 교회로써 걸음마를 시작한 중국교회에 무너가 보탬이 되는 노력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부철산 주교를 비롯한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항상 말하는 것처럼 선교에 목적을 둔 일방적인 접근이 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상호 협력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이 처해있는 입장을 존중하는 자세로 다가서는 방법이 요청되고 있다.

「종교를 비롯한 모든 행위는 오직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중국, 은혜를 입은 중국교회에 보답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되 그들의 자존심과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겸손함을 견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북경교구장 부철산 주교

“13억 인구 중 11억 복음화가 목표”

『중국 전체인구 13억 중 아무런 종교를 갖지 않은 11억의 사람들을 복음화시키는 것이 중국 가톨릭교회의 목표입니다』

북경교구장 부철산(傅鐵山) 주교는 가톨릭신문사 최홍길 사장신부와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김수창 신부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 복음화를 위한 강한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울러 부철산 주교는 최근들어 젊은층을 비롯한 지식인층의 신영세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지금 이시기야말로 중국교회 700년 역사상 교회 부흥의 황금시기를 맞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 예로 부철산 주교를 79년 개방정책을 표방한 이후 20여년만에 1천1백명의 사제가 탄생되고 5천개의 성당이 건립됐다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중국교회 부흥의 황금시기

『중국 천주교회는 1억의 신자를 가진 불교를 비롯 도교와 이슬람교, 개신교를 포함해 5대 종교에 속하지만 복음화율은 0.3%에 불과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역할을 막중할 뿐입니다』부철산 주교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4백만 신자들과 함께 복음화 노력에 힘쓸 것이라고 밝히고 선교의 자유가 없는 만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 신자로서의 표양 등을 통해 복음화율을 높여나갈 방침임을 천명했다.

중국의 가톨릭신자들은 중국사회에서 어느 종교 신자들보다 모범적으로 살고 있기에 중국사회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는 부철산 주교는 이런 사회적인 평가가 중국복음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지적, 머지않은 장래에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장래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부철산 주교는 이런 복음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젊은 사제, 수도자들의 양성』이라며 『한국교회 등에 많은 신학생과 성직자가 다편돼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바티칸과의 관계개선 기대

특히 전세계 교회가 기울이고 있는 2000년 대희년과 관련, 북경교구를 비롯한 거의 모든 교구에서 예수강생의 의미를 구현하는데 대희년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고 전하고 구체적으로 신자들의 태도와 정신을 새롭게 가다담는 전체적인 큰 행사와 현대교회사 20년 사진전, 역사반성과 회고의 길을 모색하는 활동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회는 교회 자체만이 아닌, 국가안에서 교회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부철산 주교는 그러한 맥락에서 양국 교회가 상호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국가간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교류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바티칸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중국 정부와 바티칸 정부와의 관계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와의 관계가 한중 정부간의 왕래이후 시작됐듯이 중국과 바티칸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임을 역설, 정부간 교류가 되면 바티칸과의 관계는 앞으로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언젠가 해결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부철산 주교는 『그 자신감은 기도에서 나오는 만큼, 매일 그 시기가 오길 바라며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마지막으로 부주교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안에서 한몸이며 일치」임을 강조한 뒤 전통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와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중국=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