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야기 교회사] (1) 글을 시작하며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10-06-16 수정일 2010-06-16 발행일 2010-06-20 제 270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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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앙 찾아줄 이천년 교회 이야기
일부 학자·성직자·수도자들 위한 어려운 교회사 아닌
대중이 쉽게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전개
안절부절못한다. 불편한 표정 역력하다.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신자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개신교 신자의 확신에 찬 논리에 가톨릭 신자가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교의 정통이라는 말이 성경 어디에 나와 있느냐.”

“중세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와 마녀사냥 등의 잘못을 저지르면서 하느님과 멀어졌다.”

낭패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머리를 짜내서 “가톨릭 교회가 먼저 생기지 않았느냐”고 우겨 보았지만, “구약의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느님 뜻을 제대로 파악 못했듯이, 가톨릭교회도 중세를 거치면서 하느님 섭리로부터 멀어졌다”는 반박에는 입이 다물어진다. 가톨릭 신자는 이제 더 이상 논쟁을 계속하다가는 체면 구길 것 같아서 그냥 입 다물기로 한다. 개신교 신자 ‘승’(WIN)이다.

안타깝다. 이 가톨릭 신자는 면죄부가 전대사의 왜곡이라는 것, 마녀 사냥이 가톨릭보다 개신교에서 더 잔혹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을 증언할 능력은 더더욱 부족하다.

교회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과 초기 교부들의 말씀들을 소중히 품에 안고 살아온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야기 교회사」를 시작하는 이유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 공부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교회사는 더더욱 그렇다. 어려운 신학적 용어들, 복잡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하지만 더 이상 교회사는 학자들만을 위한, 소수 성직자와 수도자만을 위한 것이 되어선 안 된다.

「이야기 교회사」가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이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야기’ 했다. 사도들과 교부들도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가 후대에 오면서 어려운 신학으로, 그리고 철학으로 체계화됐다. 이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시점이다. 일반 대중을 위해서다.

그래서 행장(行裝)을 꾸렸다. 옛날 선비들은 벼루와 붓을 행장 속에 꼭 넣었다지만, 이번 행장에는 성경과 함께 몇 종류의 역사책들을 챙겼다.

2000년 교회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행길…. 목적지는 분명하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역사적 사고란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역사는 단순한 사실적 나열이 아니다. 역사 서술은 목적을 가진다. 교회 역사는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 교회사」에서의 우선적 목적은 ‘지금의 신앙’이다. 이번 여행은 참 신앙이 무엇인지, 또 참 신앙의 길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또 있다. 여행을 마칠 즈음이면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을 확신에 찬 어조로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참 신앙에 대한 확신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가톨릭 신앙인이 자녀를 낳고도 유아세례를 꺼리는 사례를 많이 봤다. 대부분 “나중에 자녀가 성장해서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자손에게 물려줄 기회마저도 날리게 된다.

이번 여행은 또한 여행 너머의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 땅에 하느님 섭리를 잘 구현해 낼 수 있는지를 내다 보려면 우선 과거를 알아야 한다. 2000년 교회 역사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를 제시한다.

이제 첫 걸음을 뗀다. 가능한 어머니 무릎 베고 누워, 이야기를 듣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이야기 교회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짐이 가벼워야 한다. 옷차림도 가능한 간편한 차림이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행복하게 하는 드라마 한편 본다는 생각으로 이 여행에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한다는 그 교회의 신비한 역사 속으로 이제 긴 여행을 떠나려 한다.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기도한다. 길 위의 사도, 바오로 사도와 함께 기도한다.

「이야기 교회사」가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이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야기’ 했다. 사도들과 교부들도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가 후대에 오면서 어려운 신학으로, 그리고 철학으로 체계화됐다. 이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시점이다. 일반 대중을 위해서다. 사진은 로마 베드로 대성당 앞에 있는 베드로 성인상. 베드로 성인은 가톨릭교회의 제1대 교황이다. 베드로 성인 뒤, 성전 정면부 가장 높은 곳에 그리스도상이 보인다.

■ 바오로 사도의 ‘교회를 위한 기도‘(에페 3,14-21)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립니다.

넘쳐 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우어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