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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6) 사각지대 놓인 이주노동자들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0-04-21 수정일 2010-04-21 발행일 2010-04-25 제 269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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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 - 가톨릭신문사 공동기획
돈과 ‘목숨’ 맞바꾸며 일하는 열악한 환경
‘김포 이웃살이’가 각 기관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제1회 김포지역 이주노동자 건강검진 및 고충상담’에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이민의 날(25일)을 맞아, 이 시대의 이방인에 대해 생각한다.

저숙련 외국인력이 유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줄곧 우리 곁에 있었다. 사회의 어두운 변두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노동력을 팔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 아프다. 다리가 잘리고 손가락이 잘렸다. 암에 걸리고 피부병에 걸렸다. 심지어 돌연사 해 주검이 돼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민의 날을 맞아,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한다.

■ 사례 1 - 돌연사한 베트남 청년 팜티 투엔(28·가명)

2006년 입국해 인천광역시 검단 지역에서 목재가공업에 종사하던 팜티 투엔씨는 2008년, 주검이 돼 고국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3명이 공장의 모든 업무를 맡아 하던 영세 사업장이었다. 규모는 작으나 대기업에 납품을 할 정도로 기반이 탄탄한 회사였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는 높았다.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격주로 나와 근무하던 팜티 투엔씨는 동료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잠든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회사 측에서는 “팜티 투엔씨의 돌연사와 회사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우리 쪽에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팜티 투엔씨의 시신을 베트남에 이송하는데는 한달 보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의 시신을 거둘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김포 이웃살이(담당 신상은 신부·예수회)가 그의 시신을 거두어 모든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 그를 베트남 가족의 손으로 보냈다. 팜티 투엔의 장례미사가 열리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가족 친지들은 “너무나도 밝고 건강하던 내 아들이 대한민국에 가 송장이 돼 돌아왔다”며 통곡했다.

■ 사례 2 - 한쪽 다리 잃은 스리랑카 청년 키룬(31·가명)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스리랑카에 두고, 돈을 벌기위해 한국을 찾은 키룬 씨는 얼마 전 왼쪽 무릎 위를 절단했다. 사업장에서 일하다 발을 헛디뎌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키룬이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에 올라가 다친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신상은 신부가 “비자가 연장될 수 있도록 키룬을 재고용해준다면, 키룬이 장애보상금이나 연금을 신청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재활도 할 수 있으니 배려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회사 측에서는 “고용 계약은 4월 27일까지다. 키룬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데 회사 측에서 키룬의 고용계약을 연장할 의무가 없다”고 일축했다.

■ 사례 3 - 원인 모를 뇌종양 걸린 마르셀(32·가명)

한국에 온 이후, 마르셀은 원인 모를 피부병을 앓았다. 영세 염색 공장에 다녔던 마르셀은 피부가 너무 가려워 긁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독한 화학약품을 다뤄 피부가 아픈 것이라는 판단에 병원에 가 보았지만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없으며, 체질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눈이 아프다’는 등 온갖 통증을 호소하던 마르셀은 결국 한국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회사 측에서는 역시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며 마르셀을 몰아세웠다. 마르셀은 머리에 혹덩이를 안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죽어가는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경기도 김포 지역에는 5인 이하 영세사업장이 대거 들어와 있다. 김포시가 김포 북부지역 논밭에 무분별한 공장설립허가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3D 업종인 이 영세사업장은 외국인 근로자 1~4인의 노동력으로 운영된다. 인천·김포지역 약 2만 명의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하루 11~12시간, 1주일 6일 잔업, 일요일 특근 등 최고수준의 노동을 감당하며 이들 영세사업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노동자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12시간이 47%로 가장 많았으며, 9~10시간이 19.75%로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잔업횟수도 1주일에 6일이 23%로, 5일이 17.5%였다.(자료: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각국에 할당된 인원수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입국해, 총 116만 명의 외국인 중 약 60%에 해당하는 7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우리나라에 노동을 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전체 외국인의 약 13%에 해당하는 16만 명의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다문화지원사업’은 확대되고 있음에 비해, 약 60%에 해당하는 70만 명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사업은 점점 관심대상에서 비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상은 신부는 “지자체에 다문화지원 전담부서는 있으나 외국인 근로자 상담이나 지원 부서는 특별히 정해진 곳이 없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다문화가정을 위한 1회성 이벤트 행사에는 몇 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정작 목숨이 위태로운 이주노동자들의 진료비는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신 신부는 “매년 1~2명의 돌연사자가 나와 김포경찰서에서 ‘청년급사증후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외국인노동자들의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미비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여러분이라면 아프지 않겠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플 수밖에 없다. 신 신부는 “아프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빛이 잘 들지 않고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하며, 분진가루가 날리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매일 12시간의 노동을 한다면? 수도도 나오지 않는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새우잠을 잔다면? 아침밥은 거르고 점심 식사는 회사에서 나오는 불균형 식단으로 때우고,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가 술 기운에 의지해 잠든다면? 아프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돌연사, 뇌종양, 피부병, 낙마사고, 절단사고 등도 이해가 간다는 설명이다.

열악한 작업환경이나 주거환경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원동력인 ‘가족’이 없기에 아파도 다시 일어설 기력이 없다. 목숨과 건강을 담보로 노동력을 팔고 있는 것이다. 신 신부는 “김포지역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 것을 2~3년 전부터 감지했다”면서 “2004년 시작된 고용허가제가 전면 실시된 2007년 이후 건강이상을 호소하는 상담자가 눈에 띄게 늘었고, 사망·사고 사례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이웃살이

김포 이웃살이는 최근 ‘제1회 김포지역 이주노동자 건강검진 및 고충상담’을 개최했다. 영세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애쓰는 김포 이웃살이의 뜻에 노동부와 주한태국대사관,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재의료원,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이 힘을 보탰다. 지난 11일 오전 11시~오후 5시 김포 대곶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 김포지역 이주노동자 500여 명이 몰렸다. 한국산재의료원 산하 인천중앙병원 내·외과 검진과 방사선 촬영 등 간단한 건강검진이었지만 이마저도 처음인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신 신부는 “검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치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추가조치를 할 예정”이라면서 “더 이상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포 이웃살이는 또 이주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심신스트레스와 질병 예방을 위한 민족공동체 축구농구리그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체별 연대감 형성에도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은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고자 함이다. 매주 오후 2시 이주노동자 영어 미사를 봉헌함은 물론, 1일 피정 등 이주노동자를 위한 영성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신 신부는 “이주사목 관계자들로 구성된 연합회를 만들어 정부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감시하는 NGO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다면, 보다 더 인간적인 정부정책과 실질적 대안이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이 시대 우리 곁으로 찾아온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힘을 모을 것”을 제안했다.

“우리 이웃이 있는 곳에 함께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야 합니다. 개인적인 위로나 기쁨, 자아 실현의 행복감 없이 돈과 목숨을 맞바꾸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의정부 지역에서 일하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이주노동자 지미씨. 얼마전 본국으로 돌아간 지미씨는 한국에 와 한쪽 다리를 잃었고 꿈마저 잃었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