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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3주년 기획] 올레길 신앙길 (1) 의정부교구 뮈텔 주교가 걸어간 길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0-03-30 수정일 2010-03-30 발행일 2010-04-04 제 2691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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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따라 걸으며 당신 숨결 느낍니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등지고 한 할아버지가 일을 마친 후 갈곡리공소를 향하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꿈인 이들이 있다. 일상을 벗어던지고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왜 꼭 멀고 먼, 소위 유명한 길만을 걸어야 할까.

가까운 곳에도 ‘길’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걸음 혹은 혼자서의 ‘걸음’은 아름답다. 인생을 닮아서 그렇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주님’이 계시다면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는 더욱더 명료하고 아름다워진다.

■ 여정

신암리성당-무건리 고개-무건리 훈련장-금곡리-자운서원-법원리-갈곡리공소(도보로 8시간가량 소요)

▶신암리성당에서 신발 끈 동여매기

신암리성당 입구의 이정표.

출발지는 의정부교구 신암리성당이다.

뒤로는 한적한 젖소농장이 보이고, 앞으로는 농사를 짓는 집들로 가득하다. 성당 마당에서 삽살개 한 마리가 반긴다.

공소에서 준본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소’라는 간판을 막 뗀 모습이다. 한자로 된 십자가의 길 등 무척 예쁜 성당 내부다.

신발 끈을 동여맨다.

성당을 출발해 오른쪽으로 길을 나서면 무건리 고개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을 넘으면 그 옛날 무건리 공소와 노파공소, 금곡리 쇠골공소 등이 있었을 것이다.

길을 오를 때 주위의 거름 냄새가 대단하다. 뮈텔 주교는 이렇게 걸어 갈곡리공소를 향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무건리 훈련장이 돼 출입할 수 없다.

고갯마루에서 왼쪽능선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차가 다닐 수 있는 군사도로와 만난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무건리 훈련장의 입구다. 큰 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1.5㎞ 정도를 가면 ‘황발농장 입구’라는 간판이 있다.

<뮈텔 주교의 일기 1918년 12월 2일>

“신암리에서 무건리로 가는 동안 비가 조금 내렸다. 이 두 공소를 가르는 고개를 오르며 가슴이 뛰었다. 오랫동안 없었던 일이다. 이 공소에서는 산에서 담배농사를 짓고 있다. 저녁 때 개종한 지 20년 되는 가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던 여자에게 세례를 줬다.”

▶능선 위를 걸으면 쇠꼴마을이

‘쇠꼴마을’에 있는 소 모양(쇠꼴) 나무조각.

황발농장 쪽 길을 따라 걸으면 능선위의 고개까지 걸을 수 있다. 사실상 감악산에서 파평산으로 향해 가는 이 길에는 개신교 기도원들이 더러 있다.

길이 헷갈려 여러 번 길을 잃었다.

고개 위에는 직천리에서 법원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의 표지판이 있는데, 고개를 넘어 금곡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삼거리가 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아주산업 파주공장’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이 간판은 한자로 적혀 있기 때문에 유심히 보아야 한다.

흙길을 따라 20여 분을 내려오다 보면 큰 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금곡리 삼거리가 나온다. 금곡리 삼거리에서 ‘쇠꼴마을’이라고 적힌 간판과, 소의 모양처럼 생긴 나무 조각을 볼 수 있다.

<뮈텔 주교의 일기 1918년 12월 10일>

“10리 길인 새골공소를 향해 떠났다. 유형으로 보거나 시설로 보아 다른 공소와 다를 바 없다.

불행히도 교우들과 최가 가족 사이의 불화 때문에 최가 집에서는 왕 베드로 집에서 치르고 있는 공소에 오기를 거부하고 있다. 왕가가 최가의 동생을 방화범으로 경찰에 고발해 체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자는 냉담이 심하고 추천할 만한 사람은 못 된다.”

▶율곡 이이의 자운서원도 만나

율곡 이이 선생의 자운서원.

쇠꼴마을 동네로 들어서 계속해서 올라간다. 식물원, 찜질방 등 마을의 시설을 지나 끝까지 올라가면, 군부대의 정문을 만난다. 이 부대를 마주보고 왼쪽으로 간다. 부대를 끼고 걷는 셈이다. 비교적 길포장이 잘 돼 있어 걷기에 좋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길을 좀 잃었는데, 이때부터 길을 찾기가 수월하다. ‘사방산 정상’이라는 표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문산’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길을 만났는데, 그 반대인 ‘왼쪽’으로 걸어야 한다.

가다보니 풍경이 아름답다. 주변은 모두 논과 밭이고, 숲으로 들어가 삼림욕도 할 수 있다.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목적지를 향해 발을 굴린다. 고개를 넘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동네로 들어서는데 이곳이 ‘동문 1리’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정자를 만났다. 통나무로 지어져 정자보다는 원두막으로 칭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정자를 끼고 왼쪽으로 걸으면 큰 길과 만나는데 오른쪽은 ‘문산’, 왼쪽은 ‘법원리’로 가는 길이다. 법원리로 걷다보면 찾지 않아도 금세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바로 ‘율곡 이이의 자운서원’이다.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즐겁다.

▶반가운 인적, 그리고 하느님

법원리성당.

자운서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올라가다보면 정비가 잘 된 인도로 걷게 된다. 경기도율곡교원연수원을 지나 돌담길을 끼고 올라가면, 걷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예쁜 벤치들이 놓여 있다.

고개를 넘어 길을 내려가니 법원리 읍내가 보인다. 돌담길 벽면에 율곡 이이의 시조와 그림 등이 그려져 있어 가는 길이 심심치 않다. 법원리는 상점 간판이 통일돼 마을 전체가 무척이나 예쁘다.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다보니 문득 인적이 반갑다.

큰 길을 만나 왼쪽으로 2㎞ 직진하면 법원리성당과 만난다.

마당에 소화유치원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성당을 나와 오른쪽으로 약 3.5㎞ 걷거나 차량을 이용한다. 수암교를 지나 좌측으로 간다. 왼쪽에 고라니 농장이 보인다. 계속해서 가다보면 갈곡리 비석 밑에 ‘칡울’이라고 적혀 있어 갈곡리공소가 칠울공소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드디어 오른쪽으로 공소의 모습이 보였다. 오래된 이끼와 의자, 소나무, 시골 냄새, 어슬렁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밥 짓는 연기까지 모든 것이 소중하다.

<뮈텔 주교의 일기 1918년 12월 11일>

“칠울로 가기 위해 떠났다. 날씨가 좋고 길도 좋았다. 별 고생 없이 20리 길을 갔다. 12일, 성인 영세자 2명, 보례 7명, 유아 영세 1명. 온몸이 흉터투성이고 얼굴이 부어오른 어떤 불쌍한 불구자의 고해를 듣기 위해 마을 끝까지 갔다. 이 불쌍한 모습은 우리 죄 때문에 매질을 당한 위대한 희생자를 생각하게 했다.”

■ 뮈텔 주교가 순방한 길

법원리 읍내로 내려가는 길. 법원리성당과 갈곡리공소가 여정의 마지막이다.

기사에 나타난 여정은 1918년 12월 2일부터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직접 걸은 길이다.

이 지역 신앙촌들은 원래 개성성당 르 장드르 신부가 관할하던 공소들이었으나, 그가 병중이었던 관계로 가장 가까운 본당이었던 행주본당의 김휘중 신부가 공소 순방을 대행하게 됐다. 그러나 김 신부마저도 독감에 걸려 선종하게 됐고, 뮈텔 주교가 직접 공소 순방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 이 여정은 뮈텔 주교의 일기를 통해 그가 공소를 순방하며 판공한 사실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다. 현재 의정부교구는 이 길을 포함한 5개의 길에 리본 등을 매 순례길로 조성할 계획이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