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1784) 봄에 이승훈 성현은 북경에서 얻은 많은 책과 십자고상, 상본과 성물을 몇 가지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에게 제일 급한 것은 이벽 성조에게 자기 보물의 일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날을 세어가며, 사신들의 귀국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이벽 성조는 이승훈 성현이 가져온 많은 서적을 받자마자, 외딴 집을 세내어 독서와 묵상에 전념하기 위하여 들어갔다.
이벽 성조께서는 천주교 진리에 대한 더 많은 논증 방법 서적과, 중국과 조선의 여러 가지 미신에 대한 더 철저한 반박 서적, 7성사의 해설서, 교리문답과 복음성서의 주해, 그날 그날의 성인행적과 기도서 등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을 가지고 그는 천주교라는 것이 어떠한 종교인지를 전체적으로, 또 세부적으로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책을 읽어 가면서 새로운 생명이 자기 마음속에서 움터 나오는 것을 느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은 이렇게 생장하고 있었고, 신앙과 더불어 자기 동포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알려주고자 하는 의욕도 커갔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자기 은둔처에서 나온 이벽 성조는 이승훈과 정약전·약용 형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도리이고 참된 길이오.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나라의 무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그들에게 구속의 은혜에 참여케 하기를 원하시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이리하여 우리나라 선비로서 처음으로 정식 세례를 받게된 이승훈 성현은 자신을 북경에 파견한 이벽성조와 그 동지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승훈 성현으로부터 ‘요한세자’라는 교명으로 세례를 받은 이벽성조는 그때부터 전교에 나서서, 권철신 형제와 정약종·약전·약용 삼형제와 중인이던 김범우 등에게 세례를 주고, 차차 믿는 사람이 늘어감을 보고, 서울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선생의 집을 교회로 삼아, 이승훈 성현과 함께 최초의 주일행사를 지내게 되었다. 머리에 책건을 쓰고, 집회에 모인 수십명의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자신이 처음 창립한 조선 천주교회를 더욱 튼튼히 발전시켜 나갔다.
이와 같이 밖으로부터 어떠한 성직자가 들어와 전교함이 없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온 세계의 전교 역사상에 있어서,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이때부터 우리 선조들은 서로 교우라고 불러, 엄격했던 그때의 계급제도를 타파하면서, 조상의 신주를 신처럼 모심을 걷어치우고, 언문이라고 불러 업신여기던 한글로써 한문 교리책을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세워진 조선 천주교회는 이듬해 1785년 3월에 관헌에게 발각되어 해산되고, 그 집을 교회로 쓰게 하였던 역관 김범우선생은 잡히어 혹독한 형벌을 받고 단장으로 귀양가 2년 후 즉 1787년 정미년 음력 7월 16일에 장독(杖毒)으로 죽으니, 2년 전 을사박해 당시에 순교한 이벽 성조의 뒤를 이어 한국천주교회가 두 번째 바치는 순교제(殉敎祭)가 되었다. 이리하여 모처럼 세워진 교회가 첫 박해를 받게 되니, 이승훈 성현은 문중의 유림으로부터 또 가정의 형제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
연재가 끝난 기사모음
- 우리 본당 주보성인
-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퀴즈
-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 퀴즈
- 선교지에서 온 편지
- 성지의 풍경
- 우리교구 이곳저곳
-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퀴즈
-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 영성의 뿌리
- 기쁜 소식 퀴즈
- 순교자의 땅
- 함께 걷자 믿음의 길
- 공소의 재발견
- 성미술 순례
- 기쁜 소식
- 수원판 창간기념
- Go! 2013
- 남수단에서 온 편지
- 수원 수도회 이야기
- 내 손 안에 디딤길
- 내 손 안에 생활성가
- 나는 평신도다
- 최덕기 주교와 함께
- 가톨릭신문 수원교구 창간특집
- 명예기자의 눈
- 김남수 주교의 회고록
- 평신도 발언대
- 우리본당 이런소식
- 수원교구 성지에서 만나는 103위 성인
- 수단에서 온 편지
- 신자 경제인을 찾아서
- 한국교회 창립 선조를 찾아서
- 수단을 입으며
- 교구청 사람들 (수원)
- 소공동체 현장을 찾아서
- 소공동체 모임 자료
- 우리본당 이런사목
- 교구 열린마당
- 청소년과 함께 교회의 미래를
- 마중물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수원교구 50장면
-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
- 교구 단체를 찾아서
- 교구 복지시설을 찾아서
- 교구 신자 의식 조사 분석 보고서
-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 카리스마를 찾아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미혼모 돕기 캠페인을 시작으로 연재된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기획이 낙태종식 기획에 이어 올해부턴 생명 기획으로 발전했습니다.
- 생활 속 영성 이야기‘영성의 시대’를 맞아 평신도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영성들을 소개 합니다.
- 교리·영성 퀴즈독자들의 즐거운 신앙학습을 위해 ‘교리·영성 퀴즈’를 마련했습니다. 교리와 영성 이야기들을 퀴즈로 풀어내는 이 기획은 독자들이 보다 쉽게 교리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유튜브 속 가톨릭을 찾아라독자들의 신앙성숙을 돕기 위해 유튜브 등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다양한 온라인 영상들을 지면을 통해서도 소개합니다.
-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인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바탕으로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의 기본방향을 쉽게 풀어줍니다.
-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교리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더욱 쉽게 풀이한 사회교리를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