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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 그 후 10년 - 한국교회 무엇이 달라졌나] (1) 총론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12-28 수정일 2009-12-28 발행일 2010-01-03 제 267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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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사랑의 정신 지금도 이어가는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9년 12월 24일 자정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문을 개방하며 대희년 개막을 선포했다.
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육중한 청동 ‘성문’(the Holy Door)을 열며 역사적인 2000년 대희년의 시작을 알렸다. 세상의 죄를 보속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1000년기의 막을 연 대희년의 개막은 실로 교회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직도 생생한 2000년 대희년의 그 열기를 되돌아보고, 그때 그 다짐들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열매 맺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제삼천년기」에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33항)고 천명한 바 있다.

보편교회와 한국교회는 곧바로 대희년 준비에 본격 착수했고, 정화·화해·쇄신의 자세로 대희년 2000년을 맞았다.

특히 대희년을 기념하는 2000년에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들이 마련됐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세계교회는 한 해 동안 희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운동들을 전개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서 청원은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함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던 다른 그리스도교들과의 일치운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형제도 폐지와 가난한 나라에 대한 부채탕감운동, 그리고 1년 내내 계속된 다양한 대희년 관련 행사들은 새 천년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쇄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대희년의 바람은 한국교회에도 불었다. 1997~1998년 유례없는 국가적 부도 위기를 겪은 한국교회는 다양한 대희년 관련 행사들을 통해 복음화를 위한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교회 대희년의 화두는 쇄신과 회개, 화해, 사랑이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대희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희년이 인류 역사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사랑”이라며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실 만큼 인간에게 극진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고 그 사랑을 그대로 삶 속에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대희년의 화두”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대희년을 기억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교회의가 대희년을 맞아 발표한 공동 담화문이다. 주교단은 당시 담화에서 “한국교회가 지난 200년 동안 크게 성장했으면서도 사회 속에서 참된 삶과 복음의 표지가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한다”며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명과 대희년의 축복을 이웃과 나누며 새로운 천년기를 향하여 큰 걸음을 내딛자”고 천명했다.

‘큰 결심’은 이어졌다. 담화문은 이어 “교회는 천주 성삼께서 이루시는 통교의 산 표징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사랑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화문은 또한 “가정의 파괴, 세대간 민족간 지역간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의 심화, 무한경쟁의 시장경제로 인한 빈부격차 등 사회 현실 속에서 교회는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연대의식과 보조성의 원리를 고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담화문은 더 나아가 평화통일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로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진심으로 회개하고 마음에서 미움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담화문은 환경과 생명 문제에도 주목했다. “환경을 살리는 것은 곧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며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신성한 사명을 이행하는 것으로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과 연대해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다짐들은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바쁜 한 해였다. 2000년 당시 한국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새 시대에 맞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날 새삶’ 운동을 전개했다. 대희년의 정신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이 운동은 1998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대희년 실천운동으로 선포됐다.

대희년 기간 중에는 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 25일 춘천교구), ‘전국 청소년 축제’(7월 25~27일 대구대교구), ‘전국 생명 환경 신앙대회’(9월 24일 안동교구), ‘전국 가정대회’(10월 14~15일 청주교구) 등 굵직한 전국 규모 행사가 열렸고 그 외에 ‘전국 평신도대회’(10월 26일~11월 5일)도 있었다. 아울러 대림 제1주일인 12월 3일에는 역사적인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발표하고 각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참회 예식을 통해 역사와 민족 앞에 교회 구성원들이 소홀했던 점과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대희년은 그렇게 화려하게 지나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월 6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 폐막식을 끝으로 2000년 대희년을 마감했다. 교황은 이날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특별한 한 해가 공식적으로 마감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총의 선물은 계속될 것이며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대희년의 정신이 단순히 1년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희년의 정신을 세상 종말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이 같은 다짐은 한국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대희년 폐막미사 강론을 통해 “대희년은 오늘 막을 내리지만 대희년의 정신은 생활속에서 계속 실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희년 10년, 한국교회는 그 정신을 지금 이어가고 있는가. 혹시 잊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강산이 한번 변하는 그 기간, 교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