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아버지는 지금도 살아 계신다

입력일 2009-11-11 수정일 2009-11-11 발행일 2009-11-15 제 267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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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고뇌를 일깨워준 아버지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함께 하신다”
내가 중학생 시절, 우리 아버지는 동네에서 제일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춘양목으로 지어올린 늠름한 기와집, 백 평의 장미정원 마당 한편에 지은 일본식 목욕탕, 그리고 고가의 병풍이 펼쳐진 넓은 마루와 방안의 돈 궤짝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1950년대 중반. 내 고향 같은 곳에서 그것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모든 걸 소유한 사람이었다.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더 가질 것도, 더 기다릴 것도, 더 그리울 것도 없는 완벽한 남자였다. 건강, 돈, 사회적 지위, 친구, 그리고 여자. 모든 게 다 풍성했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에는 큰 자물쇠가 걸린 서랍이 하나 있었다. 내가 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아버지만의 비밀 공간이었다.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때였다. 용돈을 타기위해 아버지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놀랍게도 그 비밀의 서랍이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고 나는 격렬한 갈등을 느꼈다. ‘아버지는 돈이 많으니 거기서 몇 장 꺼내가도 되나, 아니면 양심적으로 우선은 돌아가야 하나….’ 가슴을 쿵쿵거리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서랍을 열고 말았다.

나는 그 서랍 안에 돈이 수북하게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라웠다. 서랍 안에 돈은 없었다. 실망스럽게도 공책이 다섯 권 들어있을 뿐이었다. 돈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적혀 있나?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뭇 실망한 마음을 감추며 공책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숫자가 차례로 쓰인 것을 보아 아버지의 일기장임이 분명했다. 그때서야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긴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며 공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제 아버지가 돌아오실지 몰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독법으로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일기장엔 행복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부자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나 이런 내 예감은 틀리고 말았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버지의 일기장을 다 읽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몹시 충격에 빠졌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워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계속해서 가슴이 뛰었다.

일기장 속에는 늘 자신감 넘치며 나날이 행복한 아버지는 없었다. 호탕하게 웃는 아버지도,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부르시는 아버지도 없었다. 늘 불안하고 외로우며, 때론 탈출구를 찾아 헤매고 마음이 아프고, 혼자 눈물 흘리는 나약한 사십대의 아버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외롭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일기장에 ‘왜 사람에겐 날개가 없나.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고 싶다’라고 적고 있었다.

그 일기장 사건으로 나는 아버지를 새로이 보게 됐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차이를 깨달으면서 누구보다도 일찍 철이 들었다. 그 서랍 속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문학 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아마 아버지의 일기장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노년에 빈털터리가 됐다. 가슴 아픈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롭고 쓰라린 삶을 살다가 어느 초라한 병원의 환자들 속에서 누워 생의 종말을 맞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비참한 병원 생활 속에서도 일기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기장에 자신이 살아 온 삶이 자식들에게 올바른 화살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게 있어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이유다. 아버지는 으뜸가는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산은 영원히 내 핏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경이로운 것은 아버지는 병원에 눕기 전 스스로 가톨릭 신자가 되셨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셨다. 그리고 내게 성모님 한 분을 남기고 하느님을 부르며 숨을 거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