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프리카에서 필리핀까지 <2>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11-03 수정일 2009-11-03 발행일 2009-11-08 제 267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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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배로 10시간…섬 주민 향해 뛰어들다
이상원 신부가 기자와 함께 타고 섬으로 향할 배를 손질하고 있다. 이상원 신부는 이 작은 배로 3~10시간씩 이동, 섬 사목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 백맹종)
3년 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은 한국에서 보면 가장 서쪽에 위치한 땅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그만큼 그곳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 환승시간 포함 총 16시간. 다시 런던에서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까지 7시간을 비행기로 간 뒤에야 간신히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상원 신부가 수도회 인사에 의해 새롭게 자리를 옮긴 필리핀 시발탄도 필리핀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땅이다. “필리핀이니까 이번에는 쉽게 가겠지”라는 예상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깨졌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걸려 도착한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내려 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말이 터미널이지 한국의 면단위 버스 정류장이다.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이상원 신부가 있는 곳으로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기자와, 보도 사진으로 평생 잔뼈 굵은 백맹종(미카엘) 선생이 함께 버스에 올랐다. 12인승 버스에 15명이 탄다. 소년 한 명이 훌쩍 버스 위에 올라타 자리를 잡는다. 버스기사가 15명의 짐을 버스 위에 올리고 밧줄로 단단히 조였다.

갓난아기를 안은 아줌마, 잊지 못할 추억을 위해 필리핀 오지 관광에 나섰다는 일본인 여성, 조카 결혼식에 간다는 40대 주부, 도시에 나왔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20대 청년, 새로 발령받은 부임지로 간다는 경찰관….

버스는 다양한 사연들을 안고 출발했다. 고행이 시작됐다. 자리가 비좁아 엉덩이 한번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무릎을 간간이 펴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쉬는 시간은 10분 간격으로 딱 2번. 그렇게 9시간을 갔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버스에서 내리자, 이상원 신부가 반긴다. 작은 키에 짧게 깎은 머리, 단단한 근육, 까만 피부. 여전히 강한 인상이다. 그 강인함에서 오히려 서글픔이 느껴졌다. 험한 땅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까. 그것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하느님이 주신 몸 하나만 믿고 삽니다.”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이 신부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젠 고생 끝인가 싶었는데, 여기가 끝이 아니란다. “여기서부터 제가 사목하는 곳까지는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상원 신부가 사목하는 따이따이 교구 소속 시발탄 본당 지역은 필리핀에서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한다. 교구 사제도 2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신부가 관할하는 섬은 40여 곳. 모두 배로 3~10시간씩 가야 신자들을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선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는데, 이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야한다.

이 신부가 섬 원주민들에 대해 말했다.

“필리핀은 도시 빈민 문제도 심각하지만 오지 신앙인들은 더욱 열악한 형편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만 받고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다. 마땅히 보낼 학교도 없고, 또 학교가 있다고 해도 학비가 없다. 열악한 가정 형편을 위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한다.

의료 문제도 심각하다. 섬에 병원이 없어 몸이 아프면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서 다시 버스로 4~9시간씩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병은 참고 버틴다. 자연히 병을 키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망률이 높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신부 숙소도 마찬가지. 그나마 이 신부는 태양열 자가 발전기를 이용해 하루 2시간 정도 전기를 사용한다. 화장실 문제 등 위생도 심각하다. 물론 이 신부 숙소의 화장실도 과거 1960년대 한국 농촌 모습 그대로다. 섬 원주민들이 한 달 고기를 잡아서 버는 돈은 한국 돈으로 약 7만 원. 필리핀 도시 노동자들의 월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쯤 되면 하루하루 삶을 버텨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교육이 시급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하고, 또 돈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고 그대로 삶을 포기합니다. 제가 마을에서 1~2명 학비를 대고 있지만, 나머지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 신부의 안내로 숙소에 도착했다. 말이 숙소지, 대나무로 대충 얽어 만든 집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상원 신부의 말이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렇게 좋은 집은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할 겁니다. 부족민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텐트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내일이면 배를 타야 한다. 10시간 거리의 섬은 도저히 찾아갈 자신이 없다고 하자, 이 신부가 “그럼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섬을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타고 갈 배를 보여주었다. 기가 막혔다. 4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조각배다. 강원도에서 자란 기자는 배를 탄 기억이 거의 없다. 묵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할 수 없이 손가락을 매만지며 성모님을 통해 기도를 바쳤다.

“이 작은 배로 바다 항해가 가능하냐”고 묻자 이 신부가 “근해에 위치한 섬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다.

이 신부는 정작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 신부가 하늘을 올려 봤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 확인한 일기예보에는 필리핀 지역에 태풍이 예보되어 있었다.

※ 필리핀 오지 섬 사목 체험·후원 문의

63-927-911-6279, 63-929-750-1356,

sangwonlee2001@hotmail.com

※후원계좌 110-077-255287 신한은행 (예금주 이상원)
이상원 신부 숙소 앞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만 받고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다. 마땅히 보낼 학교도 없고, 학교가 있다 해도 학비가 없다. 열악한 가정 형편을 위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한다.
이상원 신부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선 비포장 길을 버스로 9시간을 달려야 했다. 사진은 기자와 일행을 태운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 들른 모습.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