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결혼 이야기

입력일 2009-11-03 수정일 2009-11-03 발행일 2009-11-08 제 267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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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청첩장이 하루에도 두어 개씩 날아든다. 아마도 사랑의 계절이 온 모양이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또 결혼이란 무엇일까. 상습화된 무감각의 손으로 청첩장을 들고 생각해 본다.

우주를 단 한 사람으로 줄이고, 그 사람을 신(神)에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곧 연애라고 했다. 자주 하고 자주 듣는 말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누우면 부처님의 목침보다 작을 한 사람을 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리는 그 무한한 능력. 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결혼은 다르다. 결혼 후에는 신의 위치에서, 심하게는 신발 한 짝보다 헐거운 무언가로 바뀌는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고 지겨움으로 변질되는 요인을 결혼은 갖고 있다. 마치 일찍 부패해버리는 음식물과 같다.

결혼은 무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맛이 없다는 것이다. 연애의 짜릿한 맛은 반납당한지 오래고, 짜릿한 맛의 환상마저 증발됐단다. 가능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턱과 잡다한 일상 속에서 결혼의 맛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연애 당시 궁금하고 알고 싶던 내밀한 상대의 일상들을 직접 바라보게 된다. 곧 그것이 신비나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보이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결점과 단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혼이란 신비하고 거대한 환상의 집에서 한 걸음 나오게 된다.

그러나 결혼이 꼭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좀 천천히 생각해보면 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결혼은 아름다운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혼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결혼이 어떤 결합의 형식보다도 뛰어난 점은 한 쌍의 남녀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서로 닮아가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닳고 마모돼 결국엔 비슷해진다. 견딤의 미학과 사랑의 인내에서 비롯된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참사랑이란 평생 동안 익어 가는 과일과 같다. 그것이 사랑의 연륜이다.

애증의 세월을 보내면서 늙어가는 노부부의 아름다움은 크다. 우리는 거기에서 세월을 본다. 그 세월은 퇴색된 빛이 아닌, 보면 볼수록 윤기가 흐르는 그런 빛이다. 그 빛은 바로 사랑으로 인한 내면의 확장이며 현실의 인식이다.

사랑은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일생을 배워야하는 학과목과 같다. 그 배움에는 끝이 없다. 결혼은 바로 그 배움의 학과목이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미움은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 못하지만, 사랑은 넘어지고 비틀어져도 결국엔 원상복귀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한 사랑이 결혼으로 인해 더욱 성숙해지고 커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혼은 자기의 방식에서 점점 멀어져 결국엔 상대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허용하는 일이라고. 원래 이삼십 대에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 산다는 것은 무리한 제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제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결혼은 그저 자기의 현실을 충실히 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예비 사랑일 뿐이다. 결혼해서 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적 사랑이며, 땀 배인 사랑의 절창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결혼을 너무 기대하지 마라. 그곳엔 낙원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낙원을 만들려는 이들을 기다리는 곳이다. 결혼 생활에는 ‘어디 가?’, ‘밥 먹어’, ‘벌써 가을이야’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런 자잘하고 사소한 무언가를 함께 하는 모습. 이거야 말로 눈물 나게 고맙고 다정한 관계인 것이다. 우리말에는 기막히게 멋진 표현이 있다. ‘미운 정’이 그것이다. 그렇다. 결혼은 함께 삭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