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안중근 의사 가상 대담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9-10-21 수정일 2009-10-21 발행일 2009-10-25 제 266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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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반성은 필연이자 시대의 요청”
민족의 아픔 외면 않고 주님 도구로서 살아
바른 정신으로 무장, ‘시대의 징표’ 읽어야
이기심·집착 버릴 때 평화·나눔의 삶 가능
안중근 의사는 인류가 원죄를 짓기 이전의 겸손함을 회복하고 인류 공동의 가치를 위해 협력할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근 자신의 역저이자 반세기 넘게 밀리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증보판을 발간한 안중근(토마스) 의사와 만남을 요청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안 의사의 작품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의 작품이 이제 와서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지, 이번 대담은 바로 그 까닭을 찾는데 또 하나의 목적이 있기도 하다.

자신의 철학과 정신을 몸으로 증거한 삶을 통해 아시아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일궈 나가는데 기여한 공로로 이미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안 의사는 인터뷰 내내 청년의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그리스도 정신을 역설했다.

숱한 어려움을 헤쳐 온 원로의 입을 통해 거친 듯하면서도 따뜻하게 세상과 교감하고 있는 신앙인 안중근을 만났다. 그는 브라질 아마존 열대 우림 파괴를 막기 위한 국제 행사에 참가했다 막 귀국하는 길이었다.

- 연세도 적지 않으신데 예의 혈기는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제게 주신 새로운 몫, 십자가가 아닌가 싶어요. 당신의 일이시니, 제게 이렇게 맑은 정신과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 힘이 납니다.

옛날에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이제는 후세들이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는 게 우리 책임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지금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얼마나 사라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 힘이 닿는 데까지는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할 작정입니다.

- 요즘 들어 부쩍 「동양평화론」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책 판권을 보니 지난달에만 3쇄를 발행한 것으로 돼 있더군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의 마음이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가 갈구하는 평화가 과거와 다른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는 이기적인 인간의 눈길이 닿기 힘든데 있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평화라는 말이 넘쳐나는 것은 어쩌면 인류가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우리 인류가 만들어가야 할 평화의 상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평화란 단순히 죽고 죽이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역대 교황님들께서도 강조하셨듯이 평화와 창조질서 보존, 공동선 사이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표상으로 따르고자 하는 성인들도 결국 주님 안에서 참 평화를 사셨던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셨기에 비로소 주님 안에서 참 평화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 역시 세상의 것을 버렸기에 참 평화와 진정한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에서 말하고자 했던 평화도 결국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고자 한 제자들에게 주신 평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류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화란 결코 누구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데서, 그래서 인류가 원죄를 짓기 이전의 겸손함을 회복해 인류 공동의 가치를 위해 협력할 때 평화가 찾아오리라 봅니다.

- 선생님을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호칭으로 불리시는 게 좋으신지요.

저를 부르는 이러저런 소리를 듣고 우스웠습니다. 그래서 한바탕 크게 웃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저에 대한 관심 때문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헛된 세상의 이름에 얽매이는 것이 주님의 일을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에는 장군이란 표현이 적절한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토마스’라는 세례명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한국의 모세, 한국의 사도 바오로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제게는 과분할 따름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서야 믿었지만, 주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간직하고 당당히 자신의 믿음을 살아간 용기있는 신앙인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로 변화되었던 토마스 사도의 모습은 제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데도 늘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 신앙인으로서 현세를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과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제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이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도 ‘조선의 은인을 살해한 안중근 불한당을 죽이라’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올바른 정신으로 세상을 똑바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시대의 징표’를 바라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언제나 새로워지려는 쇄신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쇄신과 반성은 필연이자 시대의 요청이고, 교회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워나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늘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맞갖은 자세를 찾고 또 그것을 현실에서 충실히 살아나갈 때 하느님 나라가 부쩍 다가서리라 봅니다.

- 근래에는 아마존 열대 우림 파괴를 막기 위한 국제 행사에도 참여하시는 등 다양한 활동에 힘을 쏟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세상의 일도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들이나 어느 날 갑자기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은 도움을 청할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모두 주님의 한 자녀들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저도 모르게 나서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몸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곁을 찾아가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 바로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봐야 할 시대의 징표가 아닐까 합니다.

-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선생님을 그리스도인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는 그저 제 안에 새겨진 신앙을 살았을 뿐인데…. 역사의 한 자락을 채웠다 해서 하는 과한 칭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독립투쟁에 뛰어든 게 20대였고 단지동맹을 맺고 하얼빈에서 거사를 한 게 31살 때였습니다. 그러한 길로 저를 이끄신 분은 주님이시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주님의 도구로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분이 마련해주신 길을 걸어간 것뿐입니다. 세속의 파고가 거센 오늘날 하느님을 향한 길은 더욱 거칠 수밖에 없을 지 모릅니다. 이런 때일수록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뿌려놓으신 복음의 씨앗을 제대로 싹틔워 나갈 때 영적으로도 더욱 풍성한 여정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대담을 마친 안 의사는 바쁜 걸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한창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4대강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했다. 인파 사이로 사라져가는 조그만 노구에서 나오는 당당한 발걸음이 오래도록 시선을 붙들어 놓았다.

“또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군요.”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