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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추모 국제 학술 심포지엄] 개신교 신학자가 본 김수환 추기경의 에큐메니칼 신학

정리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09-23 수정일 2009-09-23 발행일 2009-09-27 제 266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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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교회 문 활짝 연 공의회 정신 계승·실천자”
청빈·겸손한 삶으로 일치와 공동선 지향하고
이웃 종교들의 문화적·정신적 가치 인정하며
한국 종교문화 속에 감춰진 보화 찾으려 노력
-발제 : 이정배 교수(감리신학대학교 신학과)

살아생전 뿐 아니라 하느님 품에 안기시는 순간까지 백성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상과 고귀한 뜻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크나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개신교 신학자인 필자에겐 쉽게 주어질 수 없는 사건으로서 은총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개인적으로는 청빈 겸손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일치와 공동선을 지향했다. 이는 보편적(에큐메니칼) 리더십의 산물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청빈과 양심을 자신을 지탱하는 양축으로 삼았다. 이 둘은 결코 타협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었다. 청빈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채근이었고, 양심은 국가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책무의 표현이었다. 비록 침묵이 강요되는 시기였으나 추기경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침묵 자체를 양심에 어긋나는 일로 생각했다. 물론 추기경은 교회의 수장으로서 종교가 행동주의의 오류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한 것도 사실이다. 종교가 특정 정치 이념과 동일시되거나 영혼을 잃어버린 개혁가의 모습으로 타락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추기경은 또 비(非)그리스도교와 관련, “이웃종교들에게서 발견되는 문화와 정신적 가치를 긍정하고 더불어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하면 진리, 곧 공동선의 창출 과정에 있어서 이웃종교가 그리스도교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배타주의라는 개신교의 일반적 정서에 비하면 이는 대단한 방향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한국 종교 문화 속에 감춰진 보화를 캐내는 것을 교회의 과제로 인식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느님 안에서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가난의 현실을 올바로 포용(토착화)할 때 진정한 복음화 곧 선교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추기경의 시각에서 토착화와 선교(복음화)는 나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전자가 교회의 내적과제라면 후자는 교회의 외적 사명이다. 추기경에게 있어서 선교, 무엇보다 아시아 지역내 선교는 인간 해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교회로부터 예수를 해방시켜 그를 진정한 해방자로 만드는 것이 그의 선교관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전인적 해방이 중요했다. 하지만 정치적 후진성으로 인해 억압되고 경제적 낙후로 고통을 받는 민중들의 정치 경제적 해방 없이 전인적 구원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영육으로 나눠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추기경은 민주화의 제물이 될 것을 아시아 교회와 사제들에게 요구한바 있다.

그가 수차 강조한 일치와 화합, 그리고 공동선에 대한 주장도 이런 바탕에서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추기경은 아시아 선교는 예수의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처럼 스스로 밥이 되는 행동만이 선교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1989년 서울 세계 성체대회는 아시아 및 세계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처럼 되고, 살기위한 것이었다. 남북 분단의 현실을 치유하고 아시아의 총체적 해방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추기경은 세계 성체대회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깊이 했다.

인습적 가치에 매몰되어 신앙의 가치를 내면화시키지는 못한 교회 구성원들에게 그리스도 신비를 각인시킬 기회로 삼은 것이다. 예수가 한 조각 빵이 되어 나눠졌듯 우리 몸 역시 세상을 위해 나눠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사를 통해 우리 몸이 예수의 몸이 되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론이 아닌 삶으로 고백하라는 것이다. 이런 각성을 성체성사의 일상화, 또는 생활화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런 선교 이해는 사도 바울을 환기시킨다. 바울은 다세멕(다마스커스) 체험이후 유대인의 특권의식과 헬라인의 지혜(동일성 원리)를 비판했으나 바울은 다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 비(非)기독교인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시킨 것이다.

필자는 이를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논어의 말과 연결시켜 보았다. 자신을 특정 형태로 고착화시키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세계 성체대회 역시 자신을 무화(無化)시킨 그리스도처럼 되는 존재양식, 곧 사랑을 선교의 본질로 삼고 있다.

성찬의 신비만이 복음화를 가능케 한다는 추기경의 성찰은 아시아 및 세계 평화를 위한 위대한 선교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보가 되었기에 그는 진정으로 가톨릭교회의 수장만이 아니라 민족의 사제였고, 우환의식(憂患意識)을 지닌 현명한 군자로 불려졌던 것이다. 그의 서약대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살았기 때문이다.

조국애를 영적으로 승화시켜 민족의 사제로서 살았던 그에게 교회는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교회가 목적 자체일 수 없다고 했다. 가시적 교회의 불완전함을 숨기지도 않았다. 못난 사람들, 죄인들의 집단이라고까지 말한바 있었다. 교회밖에도 구원이 없지 않음을 소신을 갖고 전했다. 비가시적인 영적 교회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가시적 교회의 자기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교회를 완성시키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약자를 관심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의 노력도 그래서 생겼다. 이를 위해 신앙인 모두가 그리스도가 되고 교회가 되어야만 했다.

토착화 역시도 봉사, 사회참여만큼이나 그에게는 교회를 완성시키는 일 중 하나였다. 보편적 하나의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 하느님 신비에 참여하는 그들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그는 이웃 종교에 대해 강제하는 가톨릭교회 수장이 아니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항상 동반자라 생각했다. 평신도 사제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빵이 되신 예수의 삶을 사는 성찬의 삶에 있어 성직자 평신도의 구별이 없다고 생각했다.

추기경은 또 청빈의 삶을 살 때 사제는 오직 은총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닫힌 교회 문을 활짝 연 충실한 공의회 정신의 계승자, 실천자였다.

그로 인해 가톨릭교회는 개혁되었고 그 변화의 힘은 사회 곳곳에 차급되었다. 그래서 이런 에큐메니칼 지도자를 가졌던 지난 세월 동안 가톨릭교회는 물론 우리 민족 역시 행복했었다.

이제 누가 있어 그 역할을 지속할 것인지 문제가 남아있다. 개신교 지도자들도 추기경을 큰 얼굴삼아 자신의 자리에서 그가 남긴 족적을 이어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이란?

일반적 의미로 교회 일치 운동을 말한다. 에큐메니컬은 그리스어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에서 유래한다. 오이쿠메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누리’ 혹은 광의적으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류로서의 교회’ ‘보편’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동번역 성서 발행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한국천주교회에선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가 관련 활동을 대표한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개원 법요식에 참석해 관응 큰스님과 인사를 나누는 김수환 추기경. 그는 비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공동선을 함께 이끌어낼 수 있는 동반자로 인식했다.
1995년 4월 11일 동방정교회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를 만나는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은 언제나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6년 7월 23일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에 참석해 가톨릭·루터교·감리교의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일치된 교회를 향한 이정표를 세웠다.

정리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