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검은 대륙에 핀 생명의 꽃 -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 현장을 가다 (3)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9-09-15 수정일 2009-09-15 발행일 2009-09-20 제 266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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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슈바이처 & 나이팅게일
“작은 사랑은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약품 구입·시설 유지비 부족
어렵사리 세워진 의료시설도
의약품 구입비 없어 활용 못해
루위병원 김근숙 수녀가 땀부 지역 에이즈 환자 방문 후 마을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있다.
안토니미션 책임자인 우수덕 수녀가 손자가 불에 데어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다 낡아 빠진 휠체어
암흑천지가 됐다. 정전이다. 얼마쯤 기다리면 예비 발전기가 돌겠거니 기대했지만, 어둠은 계속됐다. 전날 밤 환자를 진료하면서 간단한 전기 장비를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루위병원에서 일하는 수녀들은 언제나 정전이 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생활한다. 실제 응급환자를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치료하며 식은땀을 흘린 적도 있다고 한다.

땀부 지역 루위미션 내에 자리한 루위병원은 잠비아에서는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꼽힌다. 입원실은 물론 약품창고와 수술실까지 갖췄다.

그런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무풀리라 수녀원에서 8시간도 넘게 달려 땀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이 어둠이었다. 이전까진 병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의료기기들의 작동은 고사하고, 기본적으로 약품과 백신 등을 보관하는 냉장고는 돌려야할 것이 아닌가.

사회기반시설이라곤 흙길 하나 뿐인 땀부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발전을 해야 한다. 태양열 에너지를 온종일 모아도 밤이 되면 전등불은 금세 힘을 잃는다. 게다가 몇 달 내내 비가 퍼부어대는 우기에는 그야말로 애가 탄다. 이 시기에는 눈물을 머금고 비싼 기름을 사서 발전기를 돌린다. 엑스레이 기계는 사용할 엄두를 못내고, 미사나 기도 시간에도 선뜻 불을 켜기 어려운 실정이다.

루위병원은 지난 2004년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문을 열었다. 신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보낸 후원금으로 벽돌을 만들고, 한국 수녀들이 발품 팔아 사모은 수도꼭지며 시트, 담요 등으로 입원실을 꾸몄다. 덕분에 지금까지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병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지역에선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120개 병상 규모의 루위병원은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도 며칠씩 걸어와 이용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상주하는 의사와 조산사는 각 한 명 뿐이다. 덕분에 준의사격인 클리니컬 오피서(Clinical Officer)와 간호사 수녀들의 업무 부담이 만만찮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은 루위병원 외에도 무풀리라 톼타샤센터와 안토니미션 보건소(Rural Health Center)가 있다. 루위병원에 비하면 인력과 시설, 장비 등이 크게 미비하지만 이 시설들도 지역사회에선 거의 종합병원과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각 병원을 구심점으로 온갖 질병 치료는 물론 영양실조 어린이 건강관리와 호스피스, 일반 위생교육, 성교육 등을 지원하는 것도 수녀들의 몫이다. 특히 에이즈 환자의 치료 뿐 아니라 HIV 감염자를 찾아내 에이즈가 발병하지 않도록 돌보는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또 잠비아에서는 에이즈와 말라리아 환자 못지않게 산모들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 임신 연령이 낮고 생활환경이 열악해 진통 끝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안토니 미션 보건소에서는 출산 후 탯줄을 묶는 끈조차 동이 나 난감한 시간을 보낸다고. 톼타샤센터도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좁아 확장계획을 세웠지만, 공사비가 없어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잠비아 각 병원에선 의약품 구입비가 떨어진 지 벌써 7개월째 접어들었다. 선진국들의 구호기금이 잠비아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신자들이 알음알음 모아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급한 불을 끄며 생활하고 있다.

루위병원 관할 교구인 솔웨지교구 교구장 알릭 반다 주교는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가 잠비아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무한대’라는 계산이 나온다”며 의료지원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 새로운 희망의 불씨 ‘루위미션 간호학교’

루위병원 인근에 무성했던 부쉬를 싹 베어버렸다. 1만3000㎡ 규모 빈터의 흙을 파 다지고, 그 옆에서 한창 흙벽돌을 만들고 있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가 최근 루위병원 옆에 간호전문학교를 짓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잠비아에서 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의료진 양성이다. 현재 잠비아에는 의과대학이 단 1개 뿐. 그나마도 교수 부족으로 수업이 더디게 진행돼 보통 졸업하기까지 1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때문에 잠비아에서는 의사 바로 아래 단계의 자격증을 가진 클리니컬 오피서가 많고, 전문 간호사 양성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수녀회는 오랜 기간 고심한 끝에 간호학교 설립을 결정했다. 다행히 지난 2007년 김연애(요안나?85) 할머니가 보내온 기부금으로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2011년부터 학과 과정을 시작하려면 교실과 실습실 뿐 아니라 기숙사 등도 지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공사를 진행시킬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녀회는 8월 9일 땀부 현지에서 솔웨지교구장 알릭 반다 주교 주례로 간호학교 기공식을 가졌다.

반다 주교는 “루위병원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 지역 사람들이 속수무책 병으로 쓰러졌다”며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을 도와주는 한국 신자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고 강조했다. 특히 반다 주교는 “요안나 할머니의 따뜻한 정성으로 짓기 시작하는 간호학교는 잠비아 젊은이의 간호사 양성에 큰 희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의과대학으로까지 발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잠비아 선교활동에 도움주실 분

: 우리은행 111-318370-13-001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02-773-07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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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부족으로 비어있는 의료시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