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제의 해 기획-사제의 사제] 2. 필립보 네리 ⑤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09-09 수정일 2009-09-09 발행일 2009-09-13 제 266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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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 위해 ‘오라토리오회’ 창설
동료 사제들과 영적모임 ‘오라토리오회’ 창설
성경 읽고 기도·공연·노래… 영적 성장 이뤄
이후 하이든 비발디 모차르트 의해 크게 발전
로마 키에사 누오바 내에 있는 필립보 네리 제단. 이곳에서 성직자들로 구성된 오라토리오회가 시작되었다.
사제 필립보의 뛰어난 영성과 고해성사에 대한 열정은 이미 유럽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 필립보를 로마인들은 ‘로마의 사도’로 불렀다. 수많은 이들이 주위에 몰려들었으며, 고해성사를 청했다. 그는 모든 이들을 두 팔로 받아들였다. 노인, 가난한 이, 청소년, 서민들도 늘 가까이 하며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지만, 영적 진보에 대해서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기도 모임을 만든다. 억지로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찻잔 속의 물이 넘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다.

‘오라토리오회’는 이렇게 생겨났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오라토리오’(Oretorio)를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한 대규모 악곡으로 알고 있다. 이 오라토리오의 기원이 바로 필립보에 있다.

오라토리오라는 용어는 본래 수도원 혹은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경당을 의미했다. 그런데 필립보가 이 경당에서 동료 사제들과 영적 모임을 갖고 고해성사를 베풀었고, 모임 명칭도 자연스레 ‘오라토리오회’가 됐다. 이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이 모임을 공식 승인했고, 이후 오라토리오가 음악용어로 정착됐다. 오라토리오 모임에서 성경을 감동적으로 느끼기 위해 신비극을 공연하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후 오라토리오는 하이든, 비발디, 모차르트에 의해 크게 발전한다.

어쨌든 필립보의 오라토리오회는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제들이 참여가 크게 늘기 시작한다. 오라토리오회는 엄격한 생활규율과 청빈을 요구하지 않았다. 별도의 서원도 필요 없었다. 재산 포기와 청빈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라토리오회는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행복한 사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줄 뿐이었다. 회원들은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를 하는 한편, 영성 서적과 성인전을 탐독했다. 그리고 묵상을 나눴다. 그 열매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헌신, 복음 선포에 대한 열정, 신비 체험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사제가 쇄신되면서 교회도 쇄신되기 시작했다. 오라토리오회를 통해 로마는 쇄신되고 있었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던 필립보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성인들의 생애를 조사하다 보면, 공통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죽음 직전에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는 점이다. 영성가들은 이를 두고 영혼의 정화 과정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고통을 겪고 부활했듯이, 이 땅의 영혼이 천국문에 들기 위해선 연옥의 고통이 필수적인데, 성인들은 대부분 지상에서 그 고통을 먼저 받는다는 것이다. 연옥에서의 고통 없이 천국으로 바로 오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필립보도 5년 동안 심한 병고에 시달렸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든지, 실신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필립보는 고통 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데, 저는 깨끗하고 안락한 침대에 누운채, 이렇게 친절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간호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염치없는 노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 외의 것을 원하는 참으로 해야 할 일을 모르는 자입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유일한 힘은 성체와 성모께 대한 의탁이었다. 필립보는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이것이 나의 약”이라고 했다. 필립보는 또한 병으로 고통받는 가운데서도 성모에 대한 남다른 신심을 보였다고 한다.

필립보 스스로 예언한 날이 다가왔다. 1595년 5월 26일 이었다. “나는 갑니다. 나는 갑니다.” 필립보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축복을 했다. 그리고 입속으로 어떤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로마의 모든 이들이 필립보를 애도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성인께서 돌아가셨다. 위대한 성인께서 돌아가셨다.”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필립보 네리를 이냐시오 로욜라,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이시도로, 아빌라의 데레사 등과 함께 성인품에 올렸다. 필립보 네리의 축일은 성인의 선종일인 5월 26일이다.

■ 젊은이들을 위한 성 필립보 네리의 충고

- 육신을 돌보는데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마라. 교만을 미워하라. 자주 기도하라.

- 선을 행할 시간이 주어졌으니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행복하다.

- 기쁨의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완성에 이르게 하지만 우울한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 인색한 사람은 덕성에 있어 결코 진보할 수 없다.

- 하느님을 등지는 사람은 아주 쉽게 육욕에 빠진다.

- 자기를 내세우지 마라.

- 지나치게 신심에 빠져들려 하지 마라. 조금씩 시작하여, 꾸준하라.

- 마치 페스트를 경계하듯이, 거짓말하는 것을 경계하라.

- 유혹을 받게 되면 곧바로 주님께 매달려라.

- 게으름을 경계하라. 게으름은 악습의 온상이다.

- 사람들이 너에게 거두어간 영광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되돌려 주신다.

(출처 : 필립보 네리, 성 바오로, 1994)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