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제의 해 기획-사제의 사제] 2. 필립보 네리 ④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9-09-02 수정일 2009-09-02 발행일 2009-09-06 제 2663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끈질긴 고해성사로 ‘회개의 행복’ 선사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고해성사에 열중
직위고하 막론하고 모든 이를 평등하게 대해
한 사제가 고해성사를 마친 신자를 축복하고 있다.
사제가 된 기쁨? 글쎄….

필립보 네리에게 그런 흥분이 있었다는 기록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사제가 되길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사제의 길로 저절로 들어선 것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따랐을 뿐이다.

사제가 된 필립보는 사제로서 충실하게 살았다. 평상시처럼 기도하고, 봉사하고, 희생했다. 그는 평신도일 때는 평신도로서 충실했고, 사제가 된 이후에는 사제로서 충실했다.

특히 고해성사 직무에 충실했다. 필립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성당 앞에 가서 서성거렸다. 신자들이 성당에 찾아왔을 때 언제든지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단 한 명의 신자라도 성당에 왔다가 고해 사제가 없어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고귀한 한 명의 영혼이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필립보는 이처럼 단 한 명의 영혼의 회개를 위해서 발을 동동거렸다. 고해성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중요한 일도 중단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고해성사를 잘 받는 것이야말로, 모든 영적 쇄신의 기초가 됩니다.”

필립보의 뛰어난 영성과 성덕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필립보를 통한 고해성사에서 특별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똑같은 죄를 되풀이하는 한 청년이 죄를 고백하기 위해 왔다. 필립보가 말했다.

“당신은 회개하고 죄의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성체를 받아 모시십시오. 이후에 또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다시 나에게 오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으십시오.”

청년은 얼마 후 같은 죄를 고백하러 또다시 찾아왔다. 이후에도 한 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청년을 절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한다.

“신부님, 더 이상 죄를 고백할 용기조차 없습니다. 이젠 잘못을 바로잡을 희망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의외로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당신은 완전히 죄악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필립보는 지치지 않고 그 청년에게 고해성사를 베풀고, 성체를 모시게 했다. 결국 그 청년은 완전히 자신의 악습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얼마 후 훌륭한 고해 신부로서의 그의 명성이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고해소를 찾았으며, 역시 수많은 영혼이 회개의 행복을 맛보았다. 당연히 필립보는 이른 새벽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고해소에서 보내야 했다. 심지어 저녁 늦은 시간에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휴식시간까지 아낌없이 내놓았다.

필립보의 영성과 성덕이 한층 깊이를 더하는 것이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필립보에게는 다양한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미사를 집전하는 도중에 필립보의 몸이 공중에 떠오를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이런 현상들을 감추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 사람들이 혹시나 자신을 존경할까 걱정한 나머지, 스스로 어릿광대 옷을 입고 다닌 일도 많았다. 심지어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성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근엄한 목소리와 위엄 가득한 모습으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머집을 꺼내 유창하고 밝은 목소리로 읽어 주곤 했다. 또 사람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그의 옷자락을 만질 때면, 자신은 예수님이 아니라며 상대방의 귀나 머리카락을 익살스럽게 잡아당기기도 했다.

하지만 성덕은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짜내는 성덕은 남들 앞에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만, 찻잔에 물이 흘러넘치듯 하는 성덕은 가만히 있어도 대지를 적시게 된다. 필립보는 심지어 “거두어 주십시오. 하느님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의 은총의 물결을 멈추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필립보의 성덕은 특히 ‘나홀로 성덕’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고매한 인격 앞에 저절로 머리를 숙였다. 성 필립보 네리 전기를 쓴 카를로 가스바리는 그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중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평신도들을 인도하고, 명령하기보다는 설득하고, 엄정하게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애정으로 감싸고, 격려를 통해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교만을 스스로 벗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악을 피하고 영혼을 높은 경지로 끌어 오리는데 적합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립보는 특히 사람들을 만날 때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는 찾아오는 이들을 모두 똑같이 대했다. 그가 노인, 서민, 신심이 깊지 않은 이들, 노동자, 직업을 가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갖는 관심은 추기경과 교황, 사제, 수도자, 청년들에게 갖는 그것과 동일했다.

자연히 필립보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와 기도 모임을 한번이라도 함께 가진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필립보 신부를 알게 된 그 날은 축복받은 날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필립보 기도 모임이 세상에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다.

** 성 필립보 네리가 남긴 말

- 거두어 주십시오. 하느님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의 은총의 물결을 멈추게 해 주십시오.

-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십자가를 절대로 피하려 들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십자가보다 안전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 살아서 지옥에 내려가 보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에 지옥에 가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 하느님 저의 머리 위에 당신의 손길을 뻗쳐 주십시오. 만일 당신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필립보는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