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정영식 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74) 두려움에 대하여 ②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입력일 2009-08-19 수정일 2009-08-19 발행일 2009-08-23 제 266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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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
하느님 위한 삶 살려면 그 분 안에 머무는 시간 필요
고요한 ‘관상의 기도’ 속에 세속적 두려움 점차 줄어
성스런 두려움 커지며 하느님 뜻에 합당한 기초 다져
진정한 ‘두려움’ 영성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선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 모든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내 안으로 다가오는 하느님 안에서 머물며 쉬어야 한다. 세상에 관심이 과도하게 몰린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지 하느님을 위한 삶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안에서의 쉼은 ‘하느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내가 편하기 위해 산속에 찾아가 기도 몇 시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하느님 안에서의 쉼이 아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 깨달았기에,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 품에 안기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안에서의 쉼이다.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서 편안해 하듯 그냥 그렇게 머무르면 된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의 진정한 쉼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거룩함은 전적인 기쁨이자 자유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영성이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던 시절, 나는 이렇게 자주 말하곤 했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아기다. 아기가 어머니의 돌봄 없이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듯이 나도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기도 아니다!”

아기는 울기라도 한다. 하느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기만도 못한 ‘아무것도 아님’이다. 부모님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날 수도 지금처럼 사제가 될 수도 없었다. 주위 은인들의 도움 없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다. 하물며 나의 모든 생애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세상을 거룩함으로 채워주신다. 그리고 모든 이들을 거룩함으로 인도해주신다. 그분이 형성의 장 안에서 미치고 있는 그 힘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존재로라도 살아올 수 있었다. 거룩하신 분께서 형성의 장에 당신의 힘을 뿌려놓지 않으셨다면 나 같은 존재는 정말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살았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신앙인의 길이 아니다.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께 오히려 누만 끼치게 된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그 순간의 고요한 기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없음의 체험’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관상의 기도상태(contem plation)가 필요하다.

관상을 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관상을 위해 철저한 고독에 빠질 필요도 없다. 진정한 관상을 하게 되면 일을 하면서도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관상을 통해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하여, 세상적인 모든 두려움을 점차 줄일 수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성스런 두려움 때문에 세속적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확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관상의 역할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을 체벌하는 엄격한 아버지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섭리에 경탄하면서 그 높은 경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두려움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영성생활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저울질 없이 하느님 안에 희망과 믿음을 두는 태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과 합치된 가운데 나의 3중 구조인, 신체적·역할적·초월적 차원들과 관련하여 균형 잡힌 상태를 견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자신을 형성의 장을 향해 헌신할 수 있는 신실함과 겸손의 덕 역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다.

하느님께서 나를 내일 부른다 해도 여한이 없다. 보잘것없는 ‘없음의 존재’로 하루하루를 살도록 해 주심을 감사드릴 뿐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