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목체험기] 그늘진 삶에 한 줌 햇볕이…

조해인 신부·의정부 녹양동 이주노동자상담소장
입력일 2009-06-30 수정일 2009-06-30 발행일 2009-07-05 제 265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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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보통 때보다 조금은 일찍 온 로즈는 나를 만나자마자 동그란 눈동자를 더욱 크게 만들며 매우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팔을 붙잡고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정말 행운이었다고....

지난 주 목요일 오후에 로즈가 일하는 공장에 출입국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미등록 노동자들을 붙잡으러 왔던 것이다. 일하던 중간에 사장님이 “빨리 숨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문 쪽을 보니 출입국 직원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단다. 재빨리 몸을 숙여 가릴 만한 곳에 숨었다는 것이다. 단속반원들이 그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단다.

후일담을 들려주면서 로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오랫동안 미등록노동자로 살면서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었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을 겪고 지나갈 때는 정말 행운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무엇이 행운일까? 문득 로즈는 나에게 그것을 묻는 듯했다. 이들처럼 이주노동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행운인가? 물질이 기준이라면 일본이나 유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더 행운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로또에 당첨이라도 되면 행운일까?

로즈가 보여주고 나누어 준 행운은 아마도 현재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서 함께 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있어 주어서 고맙고 그래서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런 기회를 미등록노동자라 하여 박탈당하지 않는 것이 바로 행운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그것만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행복이 지나면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비록 붙잡혀서 고향으로 간다고 해도 순간순간 행복하고 행운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단순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지난 일요일 오후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를 꺼내듯 언제 단속이 끝날 것인지 불안한 마음을 꺼내며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묻는 그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기가 두려웠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이는 듯이 보였다. 바로 주제를 바꾸어서 떠들고 웃고는 돌아갔다. 그렇다! 그들은 이렇게 단속을 두려워하면서도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그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삶의 소중함을 보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행운이 아닐까?

조해인 신부·의정부 녹양동 이주노동자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