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지방시대 지방교회를 연다] 12. 춘천교구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09-06-25 수정일 2009-06-25 발행일 1998-01-11 제 208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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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지역 중심 사목…효율 극대화
장익 주교 부임 2년…교구 쇄신위한 바쁜 행보
대희년 준비에 교구장-사제단-평신도 한마음
교구 1/3이 북한에…북방ㆍ통일사목에 역량 집중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그대로 안고 있는 춘천교구. 교구의 1/3이 북쪽에 위치한 춘천교구는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한반도 통일에 앞장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춘천교구는 지난해 4월부터 교구장 장익주교의 강한 의지에 따라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강원도 주민들을 위한「한솥밥 한식구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적인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춘천교구의 이같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대사회운동의 역사는 그리 길지 못하다. 1939년 4월 25일 강원도가 서울교구에서 분리 감목구가 되면서부터 최근까지 춘천교구는 그 틀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못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94년 12월 14일 고 박토마 주교에 이어 교구장으로 취임한 장익 주교의 부임이후 비로소 춘천교구는 본격적인 교구의 틀과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도 전체적인 교구정비사업이 한창인 춘천교구는 그렇기 때문에 2천년대를 향한 여러가지 비전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같은 변모와 사목정책 그리고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역동적인 움직임 등은 2천년 대희년을 향한 춘천교구의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천년 대희년을 향해, 지방시대 지방교회의 주역으로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춘천교구의 모습을 통해 복음화 3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새로운 전환기

춘천교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구토마(퀸란) 초대교구장을 비롯 골롬반회 신부들의 피와 땀이 밑거름이 됐다. 이들 선교사들에 의해 기초가 놓이게 된 춘천교구는 1966년 2대 교구장으로 박토마 주교가 부임하면서부터 교구발전에 기대를 걸게 된다.

지난 30여 년간 춘천교구는 교세와 본당은 늘어났다. 그러나 여타 교구와 상대적 비교를 해본다면 그 성장은 미미한 것으로 진단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춘천교구는 1994년 12월 제3대 교구장으로 장익 주교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춘천교구는 교구의 틀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장익주교는 95년과 96년을 준비단계로 설정. 교구청 조직의 개편과 함께 교구를 다섯개 지역으로 분할, 지역 중심의 사목체제를 갖추 었다.

이 시기의 상황을 춘천교구 사제들은『전임주교가 20여 년이 넘게 사목생활을 하면서 보내온 공문보다 이 시기의 공문이 더 많았다』고 증언, 지난 2년 동안 춘천교구가 얼마나 숨가쁘게 달려왔는지 짐작케하고 있다.

우선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사제평의회 및 교구 꾸리아를 재구성. 2천년 대희년의 준비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장익주교는 96년 대림절에 대희년을 향한 사목교서 「복음을 믿고 사는 이웃 공동체」를 발표하고 이 사목교서의 정신을 2000년까지 구체적으로 실천하기위한 작업에 발동을 걸었다.

이와 같은 준비작업의 가장 큰 핵심은 사제들에 대한 교육이다. 이 시기에 춘천교구는 성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지침, 통일사목 등을 주제로 사제연수를 실시하고 사제들이 교구 쇄신 나아가 대희년 준비에 앞장서자는 결의를 단단히 했다.

■ 대희년을 향한 사목정책

춘천교구는 몇가지 지역상 특성을 갖고 있다. 우선 교구의 1/3이 북쪽에 위치해 있고, 관할 지역이 타교구보다 넓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춘천교구는 도시와 농촌, 어촌ㆍ산간지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에따라 춘천교구는 교구를 다섯 지역으로 분할,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목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역중심의 사목은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지역의 특징상 지역별로 공동 사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사목정책수립이 가능하게 됐다.

사목국장 하화식 신부는『춘천교구는 교구청 중심의 사목에서 탈피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지역중심의 사목을 준비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었다』고 설명하고『지역에 어느 정도의 결정권을 부여, 독립적이고 유기적인 사목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교구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춘천교구 사목정책의 큰 특징은 본당 단체 기구의 정리작업을 통해 단체중심에서 신자중심의 사목전환을 꼽을 수 있다.

지난 10월 28일부터 열린 97사제연수 및 총회에서도 춘천교구는 신자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오는 대림절부터 2년 동안 교구 전본당에서 주일미사 5분전에 교리를 실시한다고 결정, 단체가 아닌 개개인의 신자들을 직접적인 사목대상으로 정한 바 있다.

장익주교 역시 『우리 교회가 제3천년기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신자 개개인이 가톨릭 교회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부터 해야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이는 교리와 성서를 바탕으로 신자 개개인의 쇄신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춘천교구는 또 교구의 지정학적 특성중의 하나인 북강원도 주민, 나아가 민족 통일에 밑거름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같은 사목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그 준비 차원에서 지난 4월부터 시작한「한솥밥 한식구 운동」을 비롯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통일사목 연수」를 실시한 바 있다.

이외에도 교구내에 북한선교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춘천교구는 앞으로도 통일을 위한 다양한 사목적 대안을 마련,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춘천교구는 다양하면서도 밀도 있는 사목정책을 수립,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교구전체가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그리고 춘천교구의 이같은 사목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우선 사목의 중심에 있는 사제들의 열의가 그 어느때보다 높고, 이를 수용하고 성직자들과 함께 대희년을 준비하려는 평신도들 역시 이같은 사목정책에 대해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목국장 하화식신부는 『춘천교구가 앞으로 다양한 사목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의 힘도 필요하지만 수도회와의 연대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고『교구장 사목교서의 실천을 위해 99년까지 단계적이고 꾸준한 사목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춘천교구에는 젊은 기운이 움트고 있다. 교구 설정 최초로 한국인 주교가 부임한 것을 계기로 춘천교구는 교구장을 중심으로 사제단, 평신도들이 하나가 되어 복음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들은 머지않아「감자바위」에서「금감자바위」로 불리게 될 강원도 춘천교구를 확실히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 교구 연대표

1938년 교황청, 강원도지역 사목 성골롬반 선교회에 위임

1939년 4월 25일 서울대목구로부터 춘천감목구로 분리

1940년 구토마 신부 춘천 감목대리 임명. 신자 9천여명

1955년 9월20일 대목구로 승격

11월 23일 구토마 몬시뇰 주교로 성성

1961년 신자 3만7천5백84명

1962년 3월 10일 춘천교구 설정, 초대교구장 구토마 주교

1966년 2월 12일 박토마 주교 성성, 제2대 교구장

1970년 신자 3만6천22명

1994년 10월 30일 제2대교구장 박토마 주교 선종

12월 14일 제3대교구장 장익 주교 착좌

1996년 신자 5만4천4백56명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