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지상 신학강좌] 400. 7성사에 대한 진보적 이해 - 그리스도교 영성을 위한 성사들/이순성 신부

이순성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09-06-25 수정일 2009-06-25 발행일 1998-09-27 제 212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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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족임을 드러내
「나는 믿나이다」를 앞세울 때 거룩한 표상돼
신부가 되는 사람에게는 아래의 비잔틴 전례 고유의 기도에 표현되어 있는 바와 같다.

주님 당신께서 사제직의 반열을 올려주신 이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을 가득 채워주시어, 나무랄 데 없이 당신 제단에 서게 하시고, 당신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당신 진리의 말씀에 대한 직무를 완수하게 하시고, 영적인 예물과 제물을 당신께 봉헌하고, 재생의 목욕으로 당신 백성을 새롭게 할 자격을 지니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외아들이시며 위대한 하느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리스도를 맞이하러 나아가 당신의 무한한 인자하심으로 자기 직분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상을 받게 하소서. (교리서 1587조).

부제가 되는 사람들은 주교와 그의 사제단과 일치하여, 전례와 말씀과 자선의 봉사직을 수행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한 힘을 성사의 은총으로 받는다. (교리서 1588조).

맺음말

그리스도교 영성은 본질적으로 상호 인격적이고, 공동 사회적이며 또한 가족적인 것이다. 「형제자매들」이라는 표현은 무의미한 신심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다. 그 표현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사들은 믿는 이들이 이 점을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성사들은 그들이 한 가족으로서 함께 신앙을 살고 함께 경축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성사들은 또한 지나치게 과장된 채 「개인화」하는 신앙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한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가족임을 드러낸다. 성사들은 그들에게 하나의 가족처럼 살고 행동하도록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마이클 테일러, 성사 틀 그리고 영성, 이순성 역, 56-57참조)

성사영성은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부른다. 하지만 그분의 사랑은 하나의 막연하고 관념적인 혹은 멀리 떨어진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있는 사랑이고 틀에 잡힌 사랑이며 또 「볼 수 있게」, 「들을 수 있게」, 「만질 수 있게」된 사랑이다ㆍ(마이클 테일러, 58)

영성생활은 예수의 사랑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그 삶은 제자들이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응답하면서 사는 삶이다. 성사영성은 상징 안에 틀 잡힌 이 사랑을 마련한다. 틀 잡히지 않은 사랑은 무시될 수 있고 가치절하될 수 있다. 틀 잡히지 않은 사랑은 응답을 얻어내기 어렵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아셨던 것이고 지금도 알고 계신다.

성사들 곧 예수께서 그 안에 당신의 현존과 사랑을 틀 잡으시는 상징들이자 상징행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짜 영성생활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해서 단지 영적 존재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살과 피로 되어 있는 인간 존재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지적인 방법으로 알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그분 사랑을 「느끼고」 상징적이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현존과 사랑과 영적 실체를 상징적 통교 안에서, 그것을 통하여 아는 법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과 함께 현존하신다는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들은 그분이 그들에게 그리하도록 요청하시기 때문만 아니라 그분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돕고 계시기 때문에 위타적인 방식으로 살도록 노력한다. 성사들은 이 현존을 상징적으로 거행한다.

세상은 최초로 그리스도의 육이라는 「육체성」 안에서 하느님의 「영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사적 상징이라는 「육체성」 안에서 예수의 「영성」을 계속 체험한다. 성사들은 그분의 영적 현존과 사랑을 틀 잡고 있는 것이다ㆍ(마이클 테일러 66-67참조).

요컨대 예수께서는 성사의 상징들 안에서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그들을 위해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그들에게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믿는 이들에게 계속 가르치신다. 성사들은 또한 예수께서 믿는 이들과 함께 사시고 그들이 좀 더 위타적으로 살 수 있게 도우시고자 현존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ㆍ(마이클 테일러 68-69참조).

신앙의 성사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개별 성사 하나하나에 대하여 신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성사들은 단순한 표상들일 뿐이다. 그것들이 거룩한 표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신앙을 전제로 할 때인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성사를 대할 때 「나는 믿나이다」를 앞세워야 한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 혹은 화해성사에서 예수의 행위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성사들이 이렇게 신앙을 앞세울 것을 자극하고 요구할 때 바로 그 성사들이야말로 우리의 영성을 양육하는 부분들이 올 수 있는 것이다. 표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순성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