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지상 신학강좌] 402. 7성사에 대한 진보적 이해 - 그리스도교 토착화를 위한 성사들/이순성 신부

이순성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09-06-25 수정일 2009-06-25 발행일 1998-10-25 제 212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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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중미사와 진오귀굿의 상징행위 비교
미사의 토착적 음를 활용 상당히 진전
한국의 미사에서도 전통적인 상징들(음률과 춤)을 충분히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 민족 역시 애환을 전통적으로 표현해 오던 상징들(노래와 춤)을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상징들에 대체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예로부터 특히 춤을 춤으로써 신과의 통교를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춤판에 어우러진 동료들과 친교를 깊게 이루는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민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성서의 삶을 살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춤이 경신례 중에 추어졌던 예가 있고 다윗도 야훼 앞에서 춤을 춘 일이 있었다.

오늘날 교회의 공식 입장도 비록 전례중의 춤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발언을 하면서 올바르게 해야할 것임을 밝히고 있고(전례헌장 30항) 로마미사 전례 중에 주례자가 행하는 몸짓 자체가 원래 무도(舞蹈)형태였던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 터이기에 이왕 우리나라에서도 미사에의 토착적인 음율의 활용상은 상당히 진전중인만큼 더욱 발전적이길 바라면서 이제는 전통적인 상징(특히 몸짓)의 성사적 차원에서의 수용과 응용을 통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전례쇄신과 토착화를 이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 먼저 진오귀굿의 현실을 그 수행절차와 행해지는 상징행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이어서 교중미사 중에 행해지는 주요 상징행위들과 그 의미들을 밝혀 봄으로써 상호 비교와 평가가 가능했는데 그 결과만을 소개하겠다.

덧붙여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진오귀굿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음을 밝힌다. 첫째, 20여년 전만 해도 재수굿이 굿의 주종을 이루어 왔는데 요즈음은 진오귀굿이 주요 무의 굿으로 부상하여 왔기 때문이고 둘째, 오늘날 우리나라 인구의 과반수가 넘게 살아가는 서울ㆍ경기 지역의 굿당에서 흔히 관찰되는 것으로서 비록 80년대 이래 심히 축소된 형태를 보이긴 하지만 그 옛 형태인 70년대까지의 「묵은 진오기」야말로 전통의 구조와 상징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며 셋째, 그 진오귀굿이 바로 천신굿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교중 미사와 비교될만 하기 때문이다.

1) 비교

① 전체 상징체계 자체의 목적

진오귀굿은 그 내용이 사령과 살아 있는 이들 모두를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 굿은 살아 있는 이들과 사령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치러진다. 그 조화는 굿이 치러질 때 굿의 중요한 요소들인 신령, 무당, 신도(단골)의 관계 안에서 확인된다. 무의 굿의 전반적인 내용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진오귀굿의 이같은 내용에서 확인되는 조화(調和)는 실로 무(巫)의 원리이다. 결코 어느 한면,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침이 없이 온 구석, 모든 부분을 망라하여 고루 어우러지게 해준다. 그래서 깨어진 조화가 巫에서 굿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요컨대 진오귀굿은 무당이 단골과 신령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그 셋이 하나되는 체험을 갖게 하는데 있다. 단골의 문제 즉 인간 존재의 문제는 그 조화되는 체험을 통하여 풀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진오귀굿의 목적은 부정거리 이후 진전되는 각 거리들을 통해서 인간의 절실한 생존의 문제인 출생, 장수, 치병(治病ㆍ건강), 초복(招福ㆍ행운), 내세(來世) 등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중 미사의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미사의 지향 자체가 천체 공동체를 위한 것인데 그 지향은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망라한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여러 부분들을 비롯해서 특별히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 그리고 주님을 찾는 모든 이들(성찬기도 제 4양식)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부분인 두번째 성령기원 이후부터 끝영광송 사이의 간청기도(전구=intercessiones)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의 인사 부분과 파견에 앞서 행하는 축복에서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순성 신부·광주 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