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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입니다] 전진상 의원·복지관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9-06-23 수정일 2009-06-23 발행일 2009-06-28 제 265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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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全)진(眞)상(常)의원·복지관
치료·교육·상담 필요하면 ‘문’ 두드리세요
전진상의원·복지관 설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넘게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 해 온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
전진상 의원·복지관
전진상의원은 지난 해 9월 10병상 규모의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를 개원했다. 사진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모습.
서울 금천구 시흥동. 자동차 한 대가 드나들기도 버거운 좁은 골목길.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고도 10여분을 더 헤매서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서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로 하늘로 오르기만 하는 고층아파트와는 비교되는, 오래된 다가구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한 ‘전진상의원·복지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 진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2층 대기실로 오르는 노인의 발걸음이 힘겹기만 하다. 진료가 시작되려면 아직 20여 분이 남았는데 대기실은 벌써 환자들로 가득하다. 접수실에 붙은 안내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분들은 언제라도 상담실 문을 두드려주세요. 약값이나 진료비 때문에 치료를 계속하기 힘드신 분, 가정상담·진료상담·법률상담이 필요하신 분, 아이의 교육비 감당이 힘드신 분, 생계의 위험에 처하신 분.’

1974년 고 김 추기경 요청으로 문 열다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자리매김한 지 34년. 주변에 가득했던 산동네는 이제 고층아파트로 바뀌었고 이제는 좀 ‘살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전진상의원·복지관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가난한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1974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시흥동에 둥지를 튼 전진상 의원·복지관은 지난 30여 년간 진료소와 약국 운영, 빈민 가정방문, 유치원과 공부방, 재가노인복지, 가정호스피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등으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온전한 봉헌(全), 참 사랑(眞), 늘 기쁨(常)’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6명의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로 의원과 복지관,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경영’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대형병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전진상의원·복지관은 그대로다. 안타깝게도, 찾는 이들 또한 예전 그 사람들처럼 가난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어지간한 병에는 병원 문턱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주민들, 돈이 없어 병을 키우다가 결국 마지막 선택으로 문을 두드리는 이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전 재산을 모두 쏟아 붓고도 결국을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 국민 의료보호 시대에도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신음하는 차상위계층의 주민들도 이곳을 찾는다.

전진상의원·복지관의 활동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병을 가진 환자들 뿐 아니라 병을 가진 환자로 인해 도미노처럼 붕괴되는 가정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활동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가난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작업을 위해 가장 시급히 돌봐야 할 문제를 ‘건강’과 ‘교육’ 문제로 보았고 그런 배경에서 의료와 복지의 통합 지원에 힘써왔다. 무료진료로부터 시작한 의료복지 활동을 비롯 양육비 지원, 생계비 지원,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지역 의료 복지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 왔다. 무료유치원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환자 가족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병원조차 찾을 수 없는 이들의 가정을 직접 찾았다.

이처럼 전진상의원·복지관이 전개하고 있는 ‘의료복지’, ‘의료사회사업’은 의원이 문을 연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활동이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돌보면서도 가정해체를 예방하는 이상적인 활동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 전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작년 9월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개원

지난해 9월. 전진상의원은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의 생활공간을 떼어 내 10병상 규모의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를 열었다. 1988년부터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가정 호스피스 활동을 펼쳐 온 전진상의원이 센터를 연 것은 가정 호스피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호스피스 환자들의 전인적 치료와 돌봄을 위함이다.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일이 사회적 요구와 필요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삶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환자와 가족들과의 동행이야말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처럼 전·진·상 영성에 따른 복음 정신을 살고자하는 표현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센터는 어떤 병원에서건 환자로서 환대받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그동안의 투병생활보다 더한 고통 속에 보내야 하는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사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개원은 힘든 결정이었다. 전진상의원·복지관의 운영 대부분을 후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24시간 병동을 운영할 전문 인력과 관리 공간을 늘린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전진상의원·복지관과 30여 년을 함께 한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은 가정 호스피스를 통해 지켜 본 가난한 환자들의 아픔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말기암 환자들이 조금은 나은 삶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는 소망은 당장 닥칠 경제적 어려움보다 컸다.

30여 년 세월을 한결 같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요구되는 의료와 복지의 통합적인 모범 모델로 자리매김해 온 전진상의원·복지관이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겹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운영에 따른 경비상승과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 불황 속에서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완화의료센터는 24시간 의료진과 3교대 간호사 인력이 필수적이다.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 6명을 기본으로 한 최소 인원으로 전진상의원·복지관을 운영해 오던 상황에서 추가 인력 보충이 불가피했고 때문에 인건비와 관리비는 이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설상가상 기존 후원금마저 줄어들고 있다.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인 최혜영(실비아) 사회복지사는 “그동안 활동비의 40%를 후원금에서 충당했는데 지역 내 어려운 사람들의 증가로 지금은 60%를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며 “계속 후원금이 줄어 복지관과 의원 운영이 위기상태”라고 전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공공기관이나 복지재단, 교회 기관 등에 후원을 신청해 후원금을 받고는 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어서 지속적인 운영에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정기적인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 등과 달리 전진상의 경우는 의료와 사회복지활동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제도적인 뒷받침도 없는 상태.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은 무엇보다도 교회 차원에서 정기적인 지원에 나서줄 것을 청한다.

유송자(데레사)씨는 “이러한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실질적인 지원에 인색한 것이 현실”이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력이 이렇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운영금이 없어서 일을 해 나갈 수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겠냐”고 했다. 유씨는 “교회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통합적인 의료복지 기관의 전형이 되고 있는 이곳이 운영을 못하게 된다는 것은 교회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6명의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은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전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한 사람 인건비를 월급으로 받아쓰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전진상의원·복지관을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씨는 “작년까지는 어떻게 주님의 도우심으로 운영을 해 나갔지만 올해는 정말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길. 언뜻 팔순은 넘은 듯한 할머니가 유모차를 다리 삼아 현관문으로 들어선다. 어디가 아프신지 물어보려는데 할머니가 활짝 웃는다.

“오늘은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네. 환자가 별로 없나봐.”

전진상의원·복지관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 계속 어려움을 겪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셨던 우리 이웃, 가난한 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다.

▲후원 및 봉사문의

※후원·자원봉사 문의 02-802-9311, 9313 전진상의원·복지관, 02-727-2257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자원개발팀

※후원계좌 국민은행 037-01-0318-564 전진상복지관, 우리은행 1005-101-087283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모금된 금액은 전진상의원·복지관을 비롯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시설 지원 사업에 사용됩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