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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바오로 해]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특별기고 ‘바오로의 발자취 순례를 마치고’

최기산 주교
입력일 2009-06-17 수정일 2009-06-17 발행일 2009-06-21 제 2653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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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신앙·열정 몸으로 느끼다”
성경 속 현장 찾아 사도의 말씀 묵상
그의 삶·가르침 이해하고 실현해야
최기산 주교
지난 4월말, 인천교구 ‘바오로의 발자취 순례’ 일정에 참가한 70명의 순례단은 각자 평생에 한 번이라고 할 만큼 의미 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번 순례 길에서 마주한 곳은 바오로 사도의 주요 전도지였던 터키와 그리스였다.

터키의 당시 수도 이스탄불에는 로마시대와는 달리 가톨릭성당은 손꼽을 정도로 적게 남아있었고 대신 수많은 모스크들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서 있다. 특히 이곳 소피아성당을 방문하면서는 ‘왜 이 성당이 이렇게 파손됐고, 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에페소의 대성당들도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물론 지진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국가의 흥망성쇠와 정치, 종교의 변화로 파괴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불충하고 우상을 섬길 때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버릇을 고쳐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셨다. 때로는 전쟁의 실패로, 때로는 이민족에게 끌려가서 노예살이를 하게 하셨다.

교회가 융성하게 발전해 수많은 성당들이 세워지고 각종 행사들이 열리는 태평성대에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자칫 근본을 잊고 교회가 가야 하는 정도를 착각한 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려 다른 그 무엇에 정신을 두게 되면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다행히 에페소에서는 성모님이 사셨다는 집에서 참배하고, 집 옆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에페소는 431년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했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또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냈던 서간에는 가정에 대한 좋은 말씀이 담겨 있다.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세히 가르쳐주시고 특히 6장에서는 인간의 전투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악령들이라고 강조하신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다. 우리는 터키에서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특히 사도 요한이 편지를 보낸 일곱 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특히 라오디게이아를 방문하며 “너는 미지근하여 덥지도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내겠다”(묵시 3,14-22)는 말씀을 깊이 새겼다.

카파도키아는 신자들이 지하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다. 거기에는 3000개가 넘는 동굴성당이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 숨어서 신앙생활 한 것을 떠올리며, 오늘 우리의 처지는 얼마나 자유롭게 감사한 일인가!

그리스 필리피에는 사도 바오로가 리디아 부인에게 세례를 준 개울과 제단 또한 있어 미사를 봉헌하며, 그 물에 손을 담글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세례의 의미도 되새겼다. 나는 손으로 물을 퍼서 신자들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모두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자지러지기도 했지만, 그 의미는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테살로니카를 방문하면서 항상 감사, 기도, 기뻐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았다. 코린토에서는 항구도시로서 부유했던 그곳이 얼마나 타락했었는지를 확인하고, 사도 바오로가 영적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신 이유를 새겼다. 코린토는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가르쳐주신 곳이다(1코린 12장 참조).

사도 바오로는 걸어서 또는 돛단배를 타고 다니며 전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비행기와 버스, 근사한 배를 타고 다니며 호사스런 순례를 했다. 격이 맞지 않음을 느끼고 알았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바오로 사도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고, 어쩌면 예수님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너무도 편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찌하면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이 시대에 받아들여 주님의 말씀, 그분의 행적을 깊이 이해하고 새길 수 있는 지, 또한 바오로 사도의 삶과 그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 고민해야 하겠다.

인천교구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4월 19~30일 교구장 최기산 주교와 함께하는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를 마련,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와 신심을 되새겼다.

최기산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