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성지에서 만나는 103위 성인] (4) 단내성가정성지 이소사·이호영 남매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9-06-16 수정일 2009-06-16 발행일 2009-06-21 제 265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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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모진 고문 이겨내고 순교
이소사 성인의 초상화.
이호영 성인의 초상화.
한국교회 103위 성인 중에는 가족 순교자가 여럿 있다. 경기도 이천 출신 이소사(아가타, 1784~1839)·이호영(베드로, 1803~1838) 남매는 4년간의 혹독한 옥고를 서로 격려하고 이겨내며 마침내는 하느님 품에 안긴 성인이다.

이소사 성인은 17살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입교했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과 과 함께 서울로 이사왔다. 서울로 온 남매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이호영 성인은 유방제(劉方濟)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해의 칼날은 남매의 지고지순한 하느님 사랑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남매는 1835년 2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체포됐고 이후 포청과 형조에서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받아야 했다.

이소사 성인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이호영 성인은 형조에서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문구에 대해 수결(手決, 오늘날의 서명, 사인)을 강요하자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거룩하고 참된 도라 수결할 수 없다고 버티며 신앙을 증거 했다.

사형집행이 연기된 후에도 형벌은 계속됐지만 성인 남매는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고 형벌을 참아내며 함께 한 날 한 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결국 이호영 성인은 1838년 11월 25일 4년간의 옥살이 끝에 얻은 병으로 옥에서 순교했다. 이소사 성인도 동생이 순교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이소사·이호영 성인 남매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 단내성가정성지는

단내성지는 한국에 존재하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교우촌이며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국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이천에서 태어났거나 체포돼 순교한 5명의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이다.

성지가 가정성화를 위해 순례하는 성가정성지로 명명된 것은 성지에서 기념하는 5명 성인 중 이문우 성인을 제외하면 모두 가족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정은(바오로)와 정베드로 순교자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 김대건 신부는 부자가 함께 순교 성인이며, 이호영과 이소사는 남매, 조증이와 남이관 성인은 부부다.

가족 간 대화가 끊기고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에 처한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으려 노력했던 성인들의 자취를 좇아 가족과 함께 손잡고 단내성지를 찾는 것도 좋을 듯. 성지에는 순교자 정은(바오로) 묘소와 이천 출신 5위 성인순교비, 성당과 영성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순례문의 031-633-9531 사무실, www.dannae.or.kr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