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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희망입니다] 지체장애인자립작업장 '비둘기집'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9-04-21 수정일 2009-04-21 발행일 2009-04-26 제 2645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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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보다 힘든 건 '사회의 벽'
한두 가지 장애 가진 이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직영 지체장애인자립작업장 ‘비둘기집’ 구성원들이 재봉틀 앞에 앉아 의료용 포 제작에 한창이다.
의료용 포를 만들고 있는 비둘기집 근로자.
가톨릭신문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함께 한 해 동안 공동캠페인 ‘당신이 희망입니다 - 서로 사랑하세요’를 전개합니다. 장애인·아동·노인·여성 등 복지분야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등록단체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소개할 이번 캠페인은 사회 그늘진 곳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과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눔 일꾼들을 소개합니다. 또 주님 보시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신앙인들의 나눔도 청하려 합니다. 희망이 열매를 맺는 복된 여정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지체장애인자립작업장 ‘비둘기집’

(장애인복지 분야)

봄이 온 대학로의 활기찬 모습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접어들자 아담한 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5-4.

현관문을 지나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를 좇아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직영 지체장애인자립작업장 ‘비둘기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여섯 명의 장애인들이 재봉틀과 씨름하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포 제작이 한창이다.

비둘기집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로 인한 차별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이 희망을 키우는 장애인들의 직장이자 보금자리다.

재봉틀 앞에 앉아 일에 몰두하는 이들은 모두 한두 가지 장애를 갖고 있다. 안면에 큰 화상을 입고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 말을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 뇌병변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도 두 명. 후천적인 지체장애로 직장을 잃은 아픔도 있다. 대부분 40~50대. 모두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고 소외당한 아픔만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경험이다.

이곳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 의류와 수도회 입회자 물품, 병원 수술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의료용 포, 환자와 의사 가운 등을 만들고 있다. 언뜻 단순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생산품이지만 생산되는 물품 하나하나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장애인들의 의지가 배어 있다.

1996년부터 이곳에서 일한 한이옥(비아)씨는 “몸이 불편해 작업이 빠르진 않지만 다른 회사처럼 재촉하거나 차별도 없고 모든 일을 장애인에 맞춰 배려해주셔서 만족한다”고 전한다. 직장이지만 시설장 김다니엘씨를 비롯한 봉사자들도 가족처럼 대해주니 일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업대 사이사이로 머리 희끗희끗한 자원봉사자들도 여럿 보인다. 이날 오전 주회합을 마치고 이곳을 찾은 서울 혜화동본당 ‘황금궁전’, ‘모든 성인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들이다. 재봉을 마친 의료용 포를 정리하거나 장애인들에게 버거운 일부 작업에 손을 보태는 것이 봉사자들의 몫이다. 장애가 비교적 가볍고 기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비장애인에 비해 작업속도가 더딘 작업장 장애인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은 큰 힘이다.

이날 봉사에 나선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이곳에서 벌써 15년째 매주 봉사하고 있다. 김학선(요셉피나)씨는 “이곳 장애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며 “이곳에서 봉사의 참 맛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5년”이라는 수다 아닌 수다로 재봉틀 소리만 들리던 작업장이 웃음으로 가득 찬다.

이들 뿐 아니라 이곳에는 나눔의 손길을 전하는 곳이 많다. 청계평화시장본당 사회복지분과와 역삼동본당 빈첸시오회에서는 낡은 재봉틀과 재단기 교체에 도움을 줬고 종암동본당 청년회에서는 매주일 작업장 청소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장애인들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일하는 일터로, 자원봉사자들은 장애인들을 도우며 봉사의 참 맛을 느끼는 공간으로 자리한 비둘기집.

이쯤 되면 희망도 있을 법한데 아직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장애인보호법 상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휠체어 등 장애인이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여력이 없다. ‘그래도 이곳은 자립장이고 돈을 벌지 않느냐. 얼마나 어려운 시설이 많은데’라는 이야기에 지원을 받기도 여의치 않다. 장애인들이 생산하는 물품이라고 판로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때문에 자동화 설비로 대량생산 하는 동종업체와 어쩔 수 없이 경쟁해야 한다.

시설장 김다니엘(77)씨는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기 때문에 10개를 만들 시간에 4~5개 생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10개를 만들어 내라고 한다”고 밝힌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가 시설장을 맡고 있어 겪는 어려움도 있다. 극히 일부 신자들은 평신도가 돈 벌기 위해서 운영하는 곳에 봉사하러 갈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도 한다. 어떻게든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데 이런 편견 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함께 일하는 장애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게 다니엘씨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어려움으로 비둘기집은 지난 2006년 문을 닫기도 했다. 폐업 1년만인 2007년 5월 다니엘씨가 이곳 시설장으로 부임하며 다시 문을 열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넘기도, 뚫고 나가기도 힘들다.

“이곳마저 문을 닫는다면 하루 종일 저렇게 열심히 땀 흘리는 장애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일하는 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을 보내주시면 좋겠어요.”

박스1 - 희망을 나눠요!

◆ 판로를 열어주세요 : 비둘기집에서는 현재 성직자·수도자 의류와 병원 의료용 포를 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는 생산물품을 판매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이렇다 할 판로가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비둘기집에서는 생산된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 많은 본당에서 비둘기집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의류나 교회 전례복을 구매해주기를 청합니다.

◆ 재봉틀이 필요합니다 : 비둘기집의 재봉틀은 수리기사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노후화돼 있습니다. 최근에야 역삼동본당과 청계시장본당이 일부 지원해 몇 대를 교체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형편입니다. 장애인들의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노후화된 재봉틀을 바꾸는 게 시급합니다.

◆ 자원봉사 부탁드려요 : 현재 혜화동본당 레지오 단원들과 장위동본당 신자, 종암동본당 청년회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자원봉사자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현재 작업장에서 일하는 8명의 장애인 중 2명은 뇌병변 장애로 주중 한번은 병원에 가야 합니다. 낙후된 작업환경과 장애로 인해 작업 속도도 빠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전해주실 분들을 찾습니다.

※자원봉사 및 후원 문의 02-727-2257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자원개발팀, 02-765-1236 비둘기집

박스2 -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작업장과 작업활동시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는 현재 비둘기집을 비롯해 다수의 작업활동시설이 등록돼 있다.

비둘기집처럼 소규모 공장 수준의 작업장 뿐 아니라 장애정도가 심함에도 단순 수작업이 가능한 장애인들을 위한 작업시설도 운영되고 있다.생산되는 물품의 단가도 낮을 뿐 아니라 작업속도도 느려 큰 수익을 얻을 수는 없는 형편. 장애인들에게 노동의 즐거움과 더불어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모든 작업활동시설이 겪는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작업활동시설에서는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보듬어줄 자원봉사자들의 관심과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아래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등록된 작업활동시설들.

▲그라나다보호작업센터(서울 강서구, 02-3661-3402) ▲바오로교실재활센터 부설 작업활동시설(서울 은평구, 02-305-5180) ▲비둘기재활센터 부설 비둘기작업활동시설(서울 종로구, 02-743-9026) ▲사랑손 부설 장애인작업활동시설(서울 서초구, 02-3477-2602) ▲성지장애인작업활동시설(서울 강동구, 02-481-8666) ▲푸른작업활동시설(서울 강동구, 02-441-7222)

※도움주실분 우리은행 1005-101-087283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모금된 금액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시설지원사업에 사용됩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