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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사랑입니다 (12) 배아는 생명이다 (1)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1-08-12 수정일 2001-08-12 발행일 2001-08-12 제 226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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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 ‘잉여’란 있을 수 없어”
실험에 사용 … 폐기 … “명백한 살인”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초점 맞춰야
지난 7월 12일 미 국회의사당에서는 한 젖먹이와 이제 막 9개월 된 쌍둥이 마크와 루크 보튼이 의회 청문회 자리에 나섰다. 이 세 아이들은 모두 냉동 배아 상태로 두 가정에 입양돼 탄생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맹목적인 과학적 탐구의 희생물이 되어온 이른바 「잉여 배아」는 결코 「잉여」가 아니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쌍둥이의 엄마 루친다 보튼은 이 자리에서 최근 부시 대통령이 연방 정부 기금을 배아 간세포 연구에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슬픔을 표시하면서 『먼저 이 아기들의 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2살 반 된 한나 스트레지의 엄마 마릴린 스트레지는 한 미국 상원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냉동 배아에 대해 언급하면서 배아가 단지 『종이 조각에 찍힌 점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을 때 울음을 터트렸다고 말했다.

이른바 「잉여 배아」라고 할 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쓰고 남은 나머지, 더 이상 생명의 존엄성이 주어지지 않은 물질 덩어리를 지칭하는 듯 하다. 원래의 목적을 위해 제대로 「품질」을 갖춘 배아가 선택되고 다른 배아들은 말 그대로 잉여의 존재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용어가 제시하는 의미는 인간 배아를 지칭하는데 부적절하다 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아기들은 바로 이 「잉여」 배아에서 탄생한 온전한 생명체이다. 이들이 그야말로 「잉여」로 간주되어 연구실에서 실험대상으로 쓰여지고 결국은 폐기된다면 이는 명백한 살인이 아닐 수 없다. 배아는 온전한 인격체를 지닌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배아 문제를 둘러싼 논쟁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줄기세포(간세포) 연구와 관련된 것이다.

인간 배아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생명과학계에서는 인간의 배아에서 추출해낸 배아줄기세포가 신경, 혈액, 근육, 뼈 등 210여가지 기능의 세포로 분화, 발전할 수 있어 알츠하이머, 백혈병 등 불치 및 난치병을 대체 치료하는 조직, 장기로 활용할 수 있다며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전면적인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간 배아 자체가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이며 따라서 결국은 이 생명체를 파괴하는 배아 연구는 금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 성인의 세포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꾸준하게 나옴으로써 배아 줄기세포 대신 성체 줄기 세포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잉여 배아 문제이다. 연구 목적으로 배아를 복제하는 일은 영국 외에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금지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실험 대상으로 삼는 배아들은 주로 불임 치료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배아들이다.

불임 치료를 위해 인공수정, 체외수정을 할 때 여러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지게 되고 여기에서 실제로 몇 개만 선택된 후 나머지는 냉동 보관된다. 앞서 말한 미국의 아기들은 이렇게 냉동 보관된 상태에서 입양된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약 2백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배아 입양 희망 부부들이 있으며 약 1만1천에서 2만2천명 가량의 배아가 입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교회는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인위적인 출산 방법에 대해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광범위하게 시술되고 있는 불임 치료 후 남은 배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현실적인 면에서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이 배아들이 어차피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으므로 이 배아들을 이용해 질병 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반영돼 있다. 시안은 불임 치료 목적으로 체외수정 방법을 통해 얻어진 인간 배아는 보호돼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폐기될 동결 보관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또 인간배아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배아연구 실태를 점검, 감시하고 폐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 부시 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연방 정부가 지원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교황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연구 목적이 아닌 불임 치료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아의 연구 가능성에 대해서 주장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이같은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인간 배아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그 방법과 목적이 어떤 것일지라도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배아 즉 수정란은 그 자체로 온전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호소들이 현실 속에서 때로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곤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보관돼 있는 배아의 수는 80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배아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실험에 사용되지 않도록 할 제도적인 장치는 전무한 실태이다.

그러면 이 배아들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관리되고 이용되고 있는지 그 실태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