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사 (97)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입력일 2002-07-21 수정일 2002-07-21 발행일 2002-07-21 제 230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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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함으로 출중했던 디오니시오는
전통과 새로운 영성운동의 교량역할
23. 근대 영성 (4)

중세기 영성을 정리하면서 카르투시오 회원인 리히겔의 디오니시오(1402~1471)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스콜라학자들 중의 마지막 인물로 여겨진다. 카르투시오 회원들은 대부분의 수도자들보다 뛰어난 접근을 통하여 소위 근대 영성(devotio moderna)에 동화된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형태의 영성을 선호하였는데, 이는 실질적이고 정감적이었다. 실제로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13세기 말경 「그리스도의 생애」(Vita Christi)를 쓴 루돌프가 출현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들에 대한 묵상에 접근하는 첫 번째 작품을 출판할 때까지 문필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는 원래 성 보나벤투라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대단히 유사한 작품으로서 복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간격들을 묵시적 자료로 채우고 있다.

리히켈의 디오니시오는 영성 신학에 있어서는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가르침과 새로운 영성운동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하였다. 그는 박식함으로 출중하였고 그가 카르투시오회 은수자로 살면서 리이쥐 근처 로에르몽에서 관상생활에 몰두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놀랄 것이다. 그는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그의 신학은 위디오니시오, 빅토린 회원들, 성 보나벤투라, 제르송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가 세운 큰 공헌은 이전에 있던 영성생활에 관한 모든 이론을 종합하여 여러 결론들을 평가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나 구체적으로 주교들과 본당 신부들, 혼인한 신자들, 과부들, 군인들, 상인들 등 각계 각층에 적합하게 적용되도록 쓰여졌다. 그는 이러한 작품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일단 관상생활을 활동생활보다 좋게 보았다. 관상생활은 더 고귀하고 품위가 있으며 순수 활동적인 생활보다는 안정성이 있어 기도에 몰두할 수 있으나 가장 좋은 생활 양식은 묵상한 결과를 활동에서 드러내는 삶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활동에 힘쓰는 이들도 어느 정도 관상생활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본 것이다.

그는 영성생활의 단계를 분류하는 데는 성 보나벤투라를 추종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정화의 단계에서 죄를 극복하고 덕행에 성장하게 되며 조명의 길에서는 정신이 신적 사물을 관상하게 되고 일치의 단계에서는 신적인 사물을 관상할 때 나오는 강렬한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혼은 하느님의 무한한 불에 타게 되어 불과 같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된다.

관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은총과 사랑이 없이도 이성만으로 순수 추상적인 관상에 몰입할 수 있으니 신비적이고 사랑스러운 관상은 주입되는 것으로서 사랑의 작용을 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지혜의 선물에 의해서 완성된다. 관상에서 사랑이 작용할 때만 관상이 올바른 기도가 되며 이런 기도는 신비적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영혼이 하느님과 접촉하는 것으로서 그분의 사랑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따라 지성의 우위를 강조했다 하더라도 관상의 비밀은 열렬한 사랑에 있다고 본 것이다.

관상 기도에 있어서 사랑의 기능은 지식을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것이 되게 한다. 더구나 그는 라인란트 신비가들과 위디오니시오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관상적 지식은 부정의 어두운 지식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다른 분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비가의 말은 신비적 체험을 필연적으로 부정의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순수 추상적 관상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낮은 단계의 관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하느님을 피조물과 유비적인 관계로 생각하여 그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알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것은 제르송이 주장한 것처럼 묵상을 매일 할 때 정상적으로 관상기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준비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물이며 깊은 신앙과 열렬한 사랑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박하고 비록 배운 것이 없는 사람에게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기의 수행적이고 신비적인 영성생활의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14세기 이탈리아는 인문주의에 물든 그리스도교와 새로운 이교주의가 이미 싹트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스러운 시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개신교도들의 반란도 프랑스 남쪽과 북부 이탈리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미 13세기에 이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르네상스는 중세기 영성의 지나친 면과 지나친 지성주의를 수정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초자연적인 질서가 부정되고 인간 본성을 강조하는 인문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성은 신격화되었고 페트라르크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무지이자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비웃음을 당하고 무시되고 있었다. 과거 스콜라학파도 거절당하였고 가톨릭의 신학도 전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