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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사랑입니다 (6) 유전자 조작 (1)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1-05-20 수정일 2001-05-20 발행일 2001-05-20 제 225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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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인간 게놈 지도 완성을 지켜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최초의 달 착륙을 능가하는 인류 문명의 쾌거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한 편에서는 이에 대해 핵전쟁에 버금가는, 오만한 이성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들은 또 이 '쾌거'를 이른바 '포스트 게놈 시대'를 전망하며 유전자 패권주의를 꿈꾸는 개인과 집단, 국가의 무한 경쟁으로 인한 결과물로 간주하는 듯하기도 하다.

유전공학이 꿈꾸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꿈꾸기를 요구하는 미래는 무병장수의 세상이다. 유전자 지도에 표시된 유전자의 기능과 상호 관련성을 분석해 질병을 유발하는 매커니즘을 파악하고 새로운 유전자를 찾아내 지금까지 불치로 알려졌던 질병들을 퇴치하고 극단적으로는 장기가 노후하면 새로운 장기를 제작해 바꾸어줌으로써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전공학이 꿈꾸는 미래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유전공학의 장미빛 미래 전망은 자기 영역을 수호하고 호기심에 기반한 무한한 연구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과학자들과, 이를 이용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산업계, 그리고 세계화의 시대에 경제적 강대국으로 성장하려는 국가 정책이 공동으로 꾸며내고 있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멘델의 유전 법칙

「유전자」라는 인자가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멘델에서부터이다. G. J. 멘델은 1866년에 유전에 관여하는 특정 물질의 존재에 대해 암시했고 그 가정에 의해 멘델의 유전 법칙이 성립됐다. 1909년 W. L. 요한센이 이 인자를 처음으로 유전자라고 명명했으며 초파리의 유전에 대해 연구한 T. H. 모건이 그 개념을 확립했다. 그는 1926년 유전현상은 염색체 위에 자리잡고 있는 유전자의 행동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유전자설을 제창했다.

그후 여러 방면에서 계속된 연구로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것이 밝혀졌고 1953년 J. D. 왓슨과 F. H. C. 크릭에 의해 뉴클레오티드가 아래위로 연결된 이중나선구조의 DNA의 분자 구조가 밝혀졌다. 이렇게 유전자의 본체가 DNA이고 DNA가 그 생물 특유의 형질을 지배한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유전공학적 응용분야가 발달하게 됐다.

제3의 산업혁명

이후 유전공학은 우리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3의 산업혁명'으로 불리게 됐다. 암을 퇴치하고 노화를 방지하며 사막을 녹지로 만드는 등 에너지, 식량, 의료 등의 모든 분야에서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엄청난 효율성과 생산성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처럼 유전 공학자와 기업, 국가가 유전자 연구가 가져올 유토피아를 선전하는 동안 환경운동가와 종교단체, 시민단체들 중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그 우려의 일단이 현실화되고 있다.

현실화되는 우려들

예컨대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는 고삐 풀린 유전자 연구와 적용이 드리우는 재앙의 그림자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그간의 오염은 중금속이나 방사능 등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만 해도 인류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은 무려 8000km나 떨어진 일본에도 방사능 낙진이 떨어졌고 반경 300km 이내가 피해지역이었으며 지금도 반경 30km 이내는 주거 불가지역으로 버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피해 역시 아무리 오염의 범위가 크다 해도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것이고 오래 걸릴 지라도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오염은 생태계 자체를 교란, 파괴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각해진다.

이미 전세계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재배해왔다. 중국을 제외하고 전세계는 지난 1996년 170만ha에서 1997년 1100만ha, 1998년 2780만ha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재배했다. 동물실험의 경우에도 유전자 연구는 본격적인 생명복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남은 것은 이제 인간 뿐이었으나 지난해부터 공공연하게 이뤄지기 시작한 인간 복제 시도로 말미암아 이제 유전자 연구에서 제외될 수 있는 영역은 전혀 없게 됐다.

그리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공학, 생명공학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 문제와 관련되는 엄청난 윤리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부작용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유전자 연구가 과연 인류의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축복받은 문명인지 아니면 대재앙의 시작인지 지혜롭게 분별해야 할 필요성이 나온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