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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사랑입니다 (5) 생명의 시작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1-05-13 수정일 2001-05-13 발행일 2001-05-13 제 224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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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 순간 생명 시작” 불변의 가르침
인공유산과 태아살해는 죄악
잉태 순간부터 철저히 보호돼야
『태아는 언제부터 인간 생명인가?』

이 물음은 오늘날 엄청난 도전과 위협을 받고 있는 생명 윤리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논쟁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낙태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며 또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으로 인해 야기된 수많은 윤리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 간세포 연구 및 인간 배아 복제 문제만 해도 그 정당성 여부가 바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즉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형성된 수정란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배아 간세포 실험은 그 과정에서 수정란의 파괴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이때 수정란이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대로 인간 생명으로 간주될 때 이는 살인행위가 된다. 반면 연구자를 포함한 일부 학자와 의사, 생물학자들의 주장대로 수정된지 일정 기간이 지나야 또는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후에야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본다면 배아 간세포 연구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낙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14일 이전, 또는 착상 이전의 수정란이 인간 생명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면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할 수 없다. 그만큼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생명윤리 분야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주제이며 끊임없는 논쟁이 되어왔던 핵심적인 질문이다.

교회의 가르침

국가와 사회적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을 오랫동안 지속해왔지만 교회의 가르침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명확하다. 태아는 수태되는 순간부터 참된 의미에서 인격과 유일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것이 교회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아무리 초기 단계에서의 낙태라도 이는 인간을 살해하는 중죄이며 수정란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실험들 역시 그에 준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간주한다.

이 같은 교회의 가르침은 오늘날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유전자형의 시작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순간에 영혼이 주입되고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존재의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분할의 시기 이론」은 수태 후 약 14일간 일어나는 세포 분열은 분열 이전의 세포들이 가진 형질과 똑같은 형질의 세포들을 만들어낼 뿐이며 이 기간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개체의 특징이 발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14일 이전의 미분화 배아 세포는 유일성을 지닌 개체로 볼 수 없고 개체화 없이는 어떠한 인격화도 있을 수 없다고 보아 인간 생명의 시작은 14일이 지나야 비로소 이뤄진다는 것이다.

'착상 이론'은 수정된 세포가 착상된 순간을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수정란이 모체에 정착하기 전에 소멸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착상이 이뤄진 후에야 생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대뇌 피질의 형성에서부터 보는 '대뇌 피질의 인간화 이론'은 대뇌의 형성과 함께 인간의 인격을 위한 결정적인 가능 조건이 발생하며 그 결과 영혼의 주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뇌의 기능이 정지하면 인간을 더 이상 인간 존재로 볼 수 없듯이 대뇌 형성 이전의 세포 단계 역시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형의 시작 이론’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논쟁과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인간 생명을 수태의 순간부터라고 간주하는 「유전자형의 시작 이론」외에는 다른 어떤 주장들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교회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가르침을 따라 타인의 생명 보호 의무와 자기 생명 보장의 권리를 근본적인 바탕으로 삼아 생명에 대한 경의와 존중을 요구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목헌장 51항에서 『인공유산과 유아살해는 저주할 죄악』이라고 단죄하면서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며 이 가르침은 『변치 않으며 또 변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인공유산반대선언문」은 인공유산의 중대성에 대해 강조, 『영혼이 언제 부여되는냐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이 생명체가 자라서 충분히 결정된 독자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이미 잉태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유전학이 증명해주고 있다. …설사 초기 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에 관한 의문이 아직 남아있다해도 감히 살인을 무릅쓰는 위험은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도 객관적으로 중한 죄』라고 밝힌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