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년기획 -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철거민 자활단체 「한솥밥 도시락 생산공동체」

서상덕 기자
입력일 1999-01-10 수정일 1999-01-10 발행일 1999-01-10 제 213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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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함께 나누며 희망 일궈요”
22명이 출자 지난 5월 출범
삶의 터전 잃은 철거민 주축
사랑의 음식나누기도 펼쳐
도시락을 만드는 한솥밥 공동체 식구들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철거로 수년간 일자리를 잃었던 이들에게 한솥밥공동체는 희망을 일구는 보금자리다.
김이 자욱한 공동작업장에서는 시종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의 똑같이 반복되다시피하는 일상 속에서 이들의 웃음이 되는 일은 무엇일까.

무악고개 마루, 건장한 사내도 헐떡이며 올라서야 하는 산등성이에서는 일요일도 잊은 채 아침이면 김이 오른다. '무악세입자대책위원회 공동작업장' '한솥밥도시락생산공동체 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이 나란히 붙은 간이 조립주택,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은 다름 아닌 지난 95년 이곳이 재개발되면서 철거싸움에서 밀려나다시피했던 철거민들.

22명의 조합원이 출자해 지난 5월24일 현판식을 갖고 의욕 넘치는 출발을 한 '한솥밥도시락 생산공동체 (조합장=김영섭)'는 이미 공동체가 위치한 종로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곳곳에서 잘 나가는 자립 협동조합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다.

한솥밥공동체를 실제로 이끌어가는 이들은 8명의 정조합원들, 수녀 1명이 포함된 이들은 남녀 구분이 따로 없다. 누구든 먼저 공동작업장을 들어선 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하루 일과 준비를 서두른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쌀을 씻어 밥 지을 준비를 끝내는 것. 이어서 하나둘 작업장을 들어서는 이들에게서는 지난 밤의 피곤이 어느덧 웃음으로 변해 있다.

철거로 인해 수년간 일자리를 잃고 불안에 쫓기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요즘의 분주함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조합장 김영섭(빈첸시오)씨는 "어느 한곳에도 제대로 정착해보지 못하고 도시화 속에서 떠밀려 다니던 가난한 이들이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성을 조금씩이나마 깨달아 가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며 "한꺼번에 크는 사랑이 아니라 천천히 커가는 사랑이 오래 가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다.

김씨를 비롯한 참여조합원까지 22명이 1백만원씩 출자한 한솥밥공동체는 도시락 하나라도 배달하는 그간의 노력이 바탕이 돼 도시락 뿐 아니라 출장뷔페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고객이 부르는 곳이라면 도시락 숫자나 거리에 연연하지 않고 달려간다는 이들은 실제 서울 일원은 물론 경기도 일대에서까지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한번 드셔 보신 분들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을 만큼 자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일회용 용기 안쓰기로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한 한솥밥공동체는 마을의 독거노인들과의 도시락 나누기는 물론 근래들어 결식아동 지원사업에도 나서는 등 활동의 폭을 사랑 나누기까지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한솥밥공동체는 사랑나누기 의식을 지역사회가 함께 공유함으로써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단초로 방학이 시작되면 학교급식조차 받을 수 없는 결식 아동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사랑의 음식 나누기 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나누는 기쁨을 모르고 곤궁한 처지로만 스스로를 위치지워 왔던 가난한 이들이 나눔의 기쁨을 함께 느끼고 또 이 일에 주위의 사랑을 보태 나감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이 악이 아니라 선의 바탕도 될 수 있음을 '한솥밥도시락생산공동체'는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새해를 맞는 한솥밥공동체는 올해는 보다 큰 나눔과 사랑이 공동체 안에 넘쳐 나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랑이 자신들은 물론 사랑을 고파하는 이들에게까지 넘쳐나 가난한 이 모두를 흠뻑 적셔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한솥밥도시락생산공동체 (02)735-5253, 723-7046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