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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의 대희년 특집] ‘신자공직자’ 소명 구현 절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0-11-05 수정일 2000-11-05 발행일 2000-11-05 제 222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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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 향한 정치활동…복음적 가치 충실
여론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계층”
신자공직자 높은 비율·대통령도 신자
복음화 정치활동 부합에 노력해야
교황청은 11월 5일을 공직자들의 대희년으로 지내고 있다. 교회는 정치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정치는 정의에 합당해야 하며 정의가 없는 곳에는 정당한 정치 권력도 없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정치는 정의보다는 권모술수와 이기,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만이 마치 정치의 모든 것인양 되어 있다. 이처럼 공동선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장이 되어야 할 정치판이 이기와 권력욕으로 점철된데에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는 공직자들의 대희년을 지내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정치와 공직의 참 의미를 깨닫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한 공복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공직자들의 대희년을 맞아 참된 정치와 정치인, 공직자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빈번하게 실시되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항상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회 계층의 하나가 바로 정치인들인 것으로 밝혀지곤 한다. 국가 운영의 틀을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의 응답자가 매우 부정적인 대답을 하고 있다.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어떤 신념도 명분도 폐기하며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부류가 바로 정치인들이라는 신념 아닌 신념이 온 국민의 가슴 속에 가득차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4월 실시한 총선에서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은 모두 66명이 당선돼 역대 최다 당선 기록을 세웠으며 전체 당선 국회의원들 중에 차지하는 비율은 24.2%에 달했다.

전년보다 3.8%가 늘어났다.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행정 사법부에도 가톨릭 신자 공직자들은 전체 인구 대비 신자율보다도 높은 비율로 포진해 있으며 대통령도 신자이다. 유난히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졌고 총선연대, 낙선운동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지난 총선에서 총선연대가 낙선운동 대상으로 꼽았던 후보자들 중에는 신자 후보자들도 많은 수가 포함돼 있었다. 결국 신자 공직자들이 교회와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충실할 때 국가와 사회는 공동선을 최고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나 지금까지 공직사회가 신뢰받지 못한 점을 볼 때 그리스도인 공직자들이 과연 복음적 가치에 충실하게 자신의 소명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정치 권력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며 『권력을 가진 사람은 공익을 위하여 그것을 행사해야 하며 공익이야말로 하느님의 마지막 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력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공동선은 개인과 가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느님의 법에 맞고 값있고 행복한 생활을 쉽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이며 안정된 공적 조건의 실현을 말한다. 결국 정치 권력의 사명은 국민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활동을 조절 하고 지원해서 이들을 조화있게 공동선으로 합류시키는데 있다고 교황 비오 12세는 말했다. 사목헌장은 정치 공동체에서 공동선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75항).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부정과 탄압, 일개 개인이나 일개 정당의 전제와 불관용에 항거하여 청렴 결백과 지혜를 다하여 투쟁하며, 성실과 공평, 사랑과 정치적 용감으로써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해야』한다. 정치 권력이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팔십 주년」에서도 분명하게 지적된다. 정치 권력의 목적은 공동선의 실현이어야 한다… 정치 권력은 그 과업 수행에 있어서 특수층의 이익 추구에서 손을 떼야 하고 그대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46항). 공직 사회가 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공직에 몸담고 있는 신자 공직자들의 책임과 소명은 더욱 절실해진다. 국회의원의 20%를 상회하는 신자들이 개인의 욕심이나 당파의 이익만을 위하지 않고 공동선과 국민들을 위해 헌신할 때 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교황청은 최근 영국왕 헨리 8세의 권위에 저항해 이혼과 재혼의 부당함에 항거한 성 토마스 모어를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수호성인 으로 선포했다. 토마스 모어는 스스로 권력의 핵심에 존재했으면서도 사심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법에 따라 소신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참수돼 순교함 으로써 공복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대희년의 폐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맞은 공직자들의 대희년은 참된 정치인, 공직자의 상을 모색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