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희년 한국교회 결산 (3) 민족화해

마승열 기자
입력일 2000-12-17 수정일 2000-12-17 발행일 2000-12-17 제 223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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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 가로지른 화해의 물결
남북정상회담·이산가족 상봉 등 잇달아
95년 이후 민화위 중심 대북지원 지속
종교교류 활성화 기대…신뢰구축 우선
기술보금 확대·지원창구 단일화 필요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 6·15 남북공동선언, 8월 15일 1차 이산 가족 상봉, 11월 30일 2차 이산가족 상봉…. 올 한해 숨가쁘게 추진됐던 남북 변화의 흐름이다. 50년간 냉전체제로 얼어붙었던 남북이 2천년 대희년을 기점으로 마침내 화해분위기의 급물살을 탄 것이다.

온 겨레가 하나되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분단된 민족이 다시 하나된 제2의 광복절, 대희년이 안겨다준 은총의 선물이었다. 나라 전체가 뭉클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정녕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이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분야별 후속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또한 한민족 복음화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변모와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교회 관계자들은 그동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북한 식량지원과 기도운동을 전개해왔다면, 이젠 통일시대를 실질적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작업과 구체적인 전략마련이 필요한 시기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 정상회담 의의·성과

전 세계가 놀랐다. 지난 6월 13일, 평양에서 남북의 수장들은 각본없는 최고의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사했다.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손을 맞잡고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는 분단 55년 냉전시대의 종지부를 예고하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새로운 서막이었다.

남북이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 공존의 길로 나아가자는데 뜻을 같이 함으로써, 탈이념·탈냉전이란 세계적 추세를 역행해 온 우리 민족이 세계 질서의 흐름에 주요 역할 수행자로서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또 정상회담의 결실은 이산가족들의 두차례 상봉으로 이어졌다. 화해와 은총의 대희년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50여년의 세월을 보상받기엔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지만 남긴 성과도 컸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분단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일깨웠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증폭시켰다.

젊은층이 직접 이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동안 별반 인식하지 못했던 「통일」「이산가족」「화해」등의 말들을 가슴으로 몸으로 체험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에 제2차 이산가족 상봉의 남북 방문단장으로 천주교 인사인 장재언 (사무엘) 조선카톨릭교협회 회장과 봉두완(다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가 활약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 북녘돕기 현황

금년 한해는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와 수도회 등의 대북지원 사업이 어느때보다 활기차게 진행됐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95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 북한에 대한 화해와 일치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해왔다. 특히 96년 북녘형제와 국수나누기 운동을 시작으로 올 한해도 다양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와 함께 매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미사를 거행하는 한편, 북한 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 화해학교를 개설, 운영해왔다. 특히 금년에는 각 지구별로 민족 화해학교를 신설, 보다 많은 신자들에게 교육의 장을 열어놓고 있다.

분단의 아픔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춘천교구도 지난 97년 4월 「한솥밥 한식구 운동」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대북지원 사업을 전개해왔다. 2천년 대희년 맞이 최우선 과업으로 북녘 돕기를 설정한 바 있는 춘천교구는 북한 사목을 자원한 사제들로 구성된 「남북 한식구 새삶 모임」을 발족하기도 했다.

그리고 금년 6월 25일 열린 민족화해.일치 기도의 날 대희년 행사에서는 남녘 14개 교구와 북녘땅 3개 시, 9개 도 결연 및 춘천. 원주교구 본당과 북강원도 시군 결연식을 거행하며, 한국교회안에서 북녘동포돕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난 96년부터 꾸준히 대북지원 사업을 펼쳐온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은 올해 영양제, 감기약 등 의약품과 비료 1000톤, 양수 설비 50세트, 분무기 1000대와 이불, 옷, 옷감 등을 조선 카톨릭교협회에 전달한 바 있다. 이밖에 여러 교구와 수도회 등도 고유의 특성과 여건을 살려 지속적인 대북지원 사업을 전개해왔다.

▩ 교회내 변화 물결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종교계에도 조심스럽지만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교회 일각에서는 지금부터 통일시대를 대비한 다양한 전략과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 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시기상조란 주장도 있지만 「북한선교」란 용어가 올해 들어 점차 부각됐다. 북한을 단순한 식량지원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복음화의 대상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서울대교구는 금년 7월 5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북한사목 희망사제 모임을 가지며 향후 통일시대를 대비한 기틀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대북 지원 사업의 유기적 공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주교회의 북한 선교 위원회를 주교회의 민족 화해 위원회로 변경하고 각 교구별로 민족 화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유기 적인 협조체제 아래 대북 지원을 포함한 민족 화해 노력을 더욱 성숙시켜나가겠다는 의지다.

▩ 남북 종교교류 활성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종교 교류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종교의 기능에 대한 남북간 인식의 차이는 종교 교류.협력 활성화에 큰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활성화 방안은 이러한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모색돼야 한다.

통일분야 관계자들은 종파간 개별적인 직접 선교보다는 순수한 온정과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북한에 학교, 병원, 복지시설 등을 설립하도록 적극 지원해 범종파적인 사랑과 자비를 전파함으로써, 궁극적 으로는 남북간 화해와 상호 신뢰 구축에 이바지하는 바 클 것으로 기대된다.

또 북한의 종교 현황과 실태, 북한 종교의 특성에 대한 사전 인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김일성·김정일을 신격화해 숭배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 현존하고 있는 종교는 일반적 개념의 종교와는 다르다. 「우리식」의 북한 선교와 포교가 북한 당국을 크게 자극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울러 장기적 안목에서 종파간 상호 협조와 지원 체제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별적 경쟁적 종교 교류와 협력 추진을 지양하고 종파간 조정.협의 기구를 통해 남북 종교 활성화를 도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새로운 지원 방법 모색

2천년 대희년을 맞이해 교회 내에서 대북지원의 새로운 방안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곧 민화위 대북지원의 성격변화를 기대한 것인 동시에 향후 민화위의 위상. 역할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일연구원 김성철 박사는 『현재 남한은 60만톤, 일본 50만톤, 미국 30만톤 지원이 진행중이거나 약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남한 및 서방국가의 대규모 대북 식량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따라서 『민화위의 대북지원은 긴급지원에서 벗어나 북한의 탈북주민 인권, 환경, 보건.의료, 아동 문제 등으로 점차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단순한 식량지원이 아닌 장기적 안목의 개발지원 농업 협력 방식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식량지원만으로는 부족 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현재 한국 교회는 각 교구 또는 지구와 북한의 특정 지역이 자매결연을 맺어 비료, 농약, 종자, 농기계 등의 기술지원 방식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 대북지원 창구단일화

교회 관계자들이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던 문제 중 하나가 대북 지원 창구 단일화다. 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도 효율적인 대북사업을 위해서는 지원 창구 단일화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각 교구와 수도회 등은 교구 여건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대북 지원 사업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때에 따라 지원 품목이 중복되거나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따라서 주교회의 민화위는 이들의 지원활동을 계속해서 적극 장려하는 한편, 북한 지역 내 골고루 지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교구와 공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서울대교구 민화위 김대민 간사는 『자칫 좋은 뜻에서 각 교구와 수도회 등이 실천하고 있는 대북지원 사업이 공조체제의 미흡으로 퇴색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관성있는 대북지원을 위해서는 창구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회개와 용서

2천년 대희년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반세기에 걸친 남북 적대 관계의 청산과 남북 화해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정상 회담의 의의를 구현하고, 그 성과를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선결조건이다.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는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를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고 신뢰하며, 지난 일을 초월해 새로운 토대에서 남북 관계를 재건하고자 할 때에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구현될 것이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남북 화해의 실천적 과제들을 수행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통일 전, 통일의 과정에서 교회는 인도적 대북지원, 탈북 주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 도모 등을 통해 북한과 통일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와 관심을 높여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해 낼 수 있도록 모든 신자들이 온 마음으로 기도운동을 전개해나갈 때 진정한 화해와 일치의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설 것이다.

마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