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천년을 여는 특별기획] 20세기의 끝, 21세기의 시작 - 환경 (하) 교회의 역할

신정식 기자
입력일 2000-10-22 수정일 2000-10-22 발행일 2000-10-22 제 2222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환경사목은 필수 전문가양성 시급 
환경 단체 활동 교회 안에서 디레 위축
사제 환경의식 사목에 절대적 영향미쳐
때마침 2000년 대희년 전국 생명·환경신앙대회가 안동교구 주관으로 9월 24일 문경에서 열렸다. 「생명·환경」은 한국교회가 대희년을 보내면서 「민족화해」,「청소년」,「가정」과 함께 4대 전국 행사로 추진해온 주제다. 그만큼 「생명」과 함께 「환경」 문제가 교회안팎으로 심각하고 시급하다는 한국교회의 인식이다.

다행히도 「생명·환경 신앙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교세나 재정이 미약한 농촌교구에서 1년 남짓한 준비기간을 통해 전국 행사를 대과없이 치러냈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었다는 점이 많은 환경관련 종사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안동교구는 전국대회를 앞두고 기도운동과 교육, 환경상품 및 아나바다 운동 보급, 낙태반대 서명과 자연가족계획 홍보, 헌혈과 심포지엄 등을 마련해왔다. 특히 종파를 초월한 강연회에는 목사와 스님이 강사로 나서 신선함을 더했다. 이는 환경문제가 나만의, 가톨릭 교회만의 노력을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연대해 나가야할 소명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이번 신앙 대회가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을 발판으로 앞으로의 친환경적인 삶을 다짐하는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단순 '운동'에 그친 환경운동

문제는 교구행사가 아니라 전국대회였다는 점이다. 과연 이번 행사가 타교구 나아가 한국교회의 환경마인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동안 정체감을 벗지못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환경사목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환골탈퇴해야 된다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혹시나」하는 우려섞인 기대감이 감돌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우려를 갖게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근 교회 환경 운동이 침체 혹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환경운동이 각 교구 본당 단체에 급속히 파급되면서 폐지 수거량만 하루 10톤에 육박하고, 본당마다 재생비누 만들기가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환경학교가 개설되고 환경사진 공모전, 환경보호 등반대회 등이 열리면서 교육·문화 사업이 병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초창기 열기가 채 열매 맺기도 전에 식어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벌써 시들해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 어려웠던가? 굳이 교회서 하지않아도 될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오히려 교회 제도권 밖에 있던 환경단체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활동이 위축되는 기현상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은 『교회의 환경운동이 말 그대로 「운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개인적이고 지엽적이며 성과위주의 운동이 계속됨으로 해서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교회 환경운동이 근본적인 뜻을 살려나가지 못하면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의식 개선 절실

굳이 하느님의 창조 의지나 예수님의 가르침, 생태계의 주보 성 프란치스코의 사상이나 「우주신학」, 「생태신학」, 「창조신학」, 「환경신학」 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는 환경문제를 신학적으로 정립할 때다. 그래서 더이상 해도 되고 안해도 될 단순 활동 거리로서의 「환경운동」이 아니라 신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반드시 펼쳐야 될 「환경사목」이 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시급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특히 성직자 중심의 한국교회 에서는 교구장이나 신부 개개인의 환경의식이 교구와 본당의 환경 사목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신학교에는 아직도 환경관련 과목이 개설되지 않은 상태다. 기껏해야 윤리신학 분야에서 잠시 언급될 뿐이다. 어쩌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환경관련 논문을 쓰고 싶어도 지도해줄 교수가 없으며 「비주류」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인 관심과 소명의식으로 환경분야에 깊이 투신하고 있는 몇몇 사제들이 있음은 잘 알고 있다. 이들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지난 10년간 경험해왔다. 환경운동은 뿌리깊은 의식이나 습관과의 싸움이며 거대한 조직이나 이익단체 나아가 한 국가와의 힘겨루기가 될수도 있다. 따라서 몇몇 사람에 의존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제도권 안에서 구조적으로 환경사목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일선 본당사목 사제들이 환경사목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학기가 바뀌거나 학년이 바뀌면서 신학생들이 쓰던 방을 청소하다 보면 버리고 간 물건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내가 봐도 「이건 버릴 물건이 아닌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신학교에서 환경미화를 담당했던 한 신학생의 고백이다. 한국교회 미래 지도자 들의 환경의식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신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