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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새 희망] 통신원이 전하는 해외교회 대희년 - 필리핀

필리핀=구동욱 수사
입력일 1999-12-19 수정일 1999-12-19 발행일 1999-12-19 제 218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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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자기 회심’새복음화 이룬다
97년부터 매년 사목교서 발표
‘영광의 십지가’ 각 교구 본당 공소 순회
구동욱 수사
필리핀 가톨릭 교회의 다가오는 대희년과 새천년 준비의 핵심 주제는 「쇄신」(Renewal)과 「새 복음화」(New Evangelization)이다. 이것은 주교단의 사목교서, 신학자들의 학술회, 사목자 들의 사목회에서 미래를 향한 핵심 지침으로 항상 언급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사용하시고, 특별히 그의 사목권고인 「Tertio Millennio Adveniente」(1994)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전세계 교회에 당부하며 사용하신 단어이다.

전체 인구의 82%가 가톨릭 신자임을 자랑하는 아시아의 유일한 가톨릭 국가이며 80개의 교구, 7000여 명의 사제, 5천여 명의 남자 수도자 (사제 포함), 15000여 명의 여자 수도자와 6000만 가톨릭 인구의 필리핀이 왜 새삼 「쇄신과 새 복음화」를 대희년과 새천년을 맞이하며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적 수치의 양적 가톨릭화와는 달리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치열해지는 경쟁과 제도적 부패 앞에 더욱 심각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경제구조,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세속 문화의 도전 앞에 무기력한 가톨릭적 삶의 문화, 그리고 이러한 위기로부터 오는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자기 신원에 관한 정신적 위기를 느끼고 있는 교회 안팎의 목소리에 대답하기 위하여, 필리핀 주교단은 대희년 준비 시작해인 97년부터 대희년인 2000년까지 매해 필리핀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영성에 대한 주교단 사목교서를 하나씩 발표하고, 각 교구와 본당, 그리고 신자 개개인이 여기에 맞추어 대희년과 새천년을 준비하도록 권고해 왔다.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 내부. 3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1997년, 예수 그리스도의 해

대희년 준비의 첫해인 1997년의 소주제는 「어떻게 우리가 예수의 제자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이었다.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필리핀 교회는 좥기초 교회 공동체 운동좦(The Basic Ecclesial Communities)의 좥예수 제자 운동좦(The Communities of Disciples of the Lord)으로의 성장 변화를 유도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복음과 사회교리의 나눔을 통해 영적 성장과 도덕적 재각성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400년이 넘는 오랜 가톨릭의 역사와 압도적인 가톨릭 인구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심적 개인주의, 심지어 이기주의가 사회 곳곳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나친 가족 중심적 인간관계는 이웃 공동체 정신과 나아가 국가 공동체 정신의 결핍을 가져오게 되었다. 필리핀의 정치상황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가족관계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주교단이 공개적으로 지적하듯이 필리핀이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 발전하고 인간 공동체로 발전해 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이다. 몇 개의 힘있는 가문들이 권력을 나누고, 이권을 나누어 갖는 정치구조는 많은 일반대중을 하루 생계비 1달러 이하의 절대 빈곤에 몰아 넣으면서도 자신들은 더욱 비대해지면서 필리핀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주교단은 또 이러한 가족 중심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웃 공동체적 관계로 변화시킬까를 고민하면서 기초공동체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8년, 성령의 해

두 번째 해의 소주제는 좬새 복음화좭이다.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교회는 그 협력자이다. 바로 이 성령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회를 개방으로 이끄셨고 세상 안의 교회, 평신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신다. 복음화는 예수의 삶이 우리 안에, 교회 공동체 안에 스며들어 바로 우리 삶의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인구의 82%가 가톨릭이라고 하지만, 이곳 청소년의 6~8% 정도만이 교리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많은 수의 신자가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교육문제, 가정문제, 도덕문제, 외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문제 등등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양적 복음화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교회는 새 복음화라고 하지만 어쩌면 필리핀에서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는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인간들에게 막대하게 영향 미치는 것을 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희년과 새천년에 새 복음화는 다시 한번 예수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상 안에서, 교회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위해서이다. 성령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통해 교회를 이런 사명에로 이끄신다. 즉 성령께서는 필리핀 사회의 징표를 통해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여기에 교회가 예수의 이야기로 대답해 가는 것이 새 복음화 아니 복음화일 것이다.

1999년, 성부의 해

세 번째 해의 소주제는 좬가난한 이들의 교회좭이다. 사랑과 자비의 성부상은 예수님의 지상 삶의 출발과 목적이셨고 우리 모두의 삶의 출발과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필리핀 마닐라 시를 차를 타고 가다보면, 공간만 있으면 터를 닦고 무리를 이루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또 거리 곳곳에서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닐라 시뿐만이 아니라 지방도시들도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필자가 주말마다 기초공동체 모임을 위해 가는 마닐라의 한 빈민지역에서는 영양이 결핍된 신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피부병 있는 갓난 아이들에게 변변한 약조차 사줄 수 없는 가난한 현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부자들은 자신들의 담을 더욱 높이고 비슷한 부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동네 전체에 울타리를 치고 경비병을 세우는 것 또한 이곳의 현실이다. 이러한 것들은 필리핀 교회가 대답하여야 할 명백한 시대의 도전이다.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기를 겸손하게 내맡길 수 있을 때 가난한 이들의 교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대희년

필리핀 교회는 대희년인 2000년에는 특별한 소주제나 방향을 제시함 없이 교회의 캘린더에 따라 각 직종별, 분야별 대희년을 선포할 계획이다. 이번 성탄 때 각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축성된 좥영광의 십자가좦 가 대희년 동안 각 교구내의 본당과 공소를 순회하고 2001년 1월 6일 각 주교좌 성당으로 되돌아와 그 상징적 대희년의 축제를 마치게 된다. 주교단은 필리핀 영성에 대한 사목교서를 이미 발표했다. 그 핵심은 한 국민으로서 영성이 왜 중요한 지를 묻고,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국민영성을 이룩했는 지를 자성하고, 지금까지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어디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의 전통 심성과 그리스도 영성을 어떻게 일치, 발전시켜 가야하는가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우선, 필리핀 사람들은 가족중심의 민족으로서 가족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는다. 교회는 이러한 가족 중심의 전통이 그리스도교의 보편주의 문화와 결합하여 가족의 테두리로부터 나아가 보다 넒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포용하는 영성을 이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또 함께 식탁을 나누는 문화를 갖고 있다. 교회는 이런 식탁문화가 가족과 친구들의 한계를 넘어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에게까지 다다를 수 있는 보편성을 갖는 영성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정감적인 국민인데, 교회는 이 정감적 심성이 입을 것과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필리핀의 전통 심성 안에는 영웅을 숭배하는 사상이 강한데, 이것이 인간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예수님의 투신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각종 영(靈)들이 집과 나무, 각 사람들에게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적 전통심성이 어떻게 일상 생활에서 성령의 소리를 듣고 따르는 영성으로 변화 발전 될 수 있는지에 교회는 주목하고 있다.

마닐라의 한 빈민지역에 사는 알베르토, 조세핀 부부아 가족들.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미소가 밝다.

시대 징표에 겸손히 응답

지난 97년부터 지금까지 필리핀에서는 많은 신앙모임, 학술회, 음악회, 연수회, 피정 등등 대희년과 관련된 행사와 모임이 있었다. 대희년의 노래가 작곡되어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가 하면, 주교들은 신학자를 초대하여 새로운 신학을 함께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교단 교서와 여러 가지 행사들과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느껴지는 이곳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필리핀 교회가 희망하는 대희년과 새천년의 꿈은 밝지만은 않는 듯이 보인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보여주시는 시대의 징표에 교회가 겸손되게 응답할 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리핀 교회가 해야 할 것은 「철저한 자기회심」(Radical Conversion)일 것이다. 필리핀 안에서의 교회는 거대한 실체로서 여러 가지 문제들의 한가운데 있다. 뼈를 깎는 자기 회심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 에게 던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필리핀 교회가 마음 깊숙이 「예」라고 대답 할 수 있을 때, 대희년과 새천년의 희망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필리핀=구동욱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