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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새 희망] 통신원이 전하는 해외교회 대희년 - 미국

미주지사=김보섭 기자
입력일 1999-12-12 수정일 1999-12-12 발행일 1999-12-12 제 218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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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주의 극복, ‘영적인 삶’ 구현한다
상실된 가정의 기능 회복 역점
‘정의·평화·자선’ 결심 다지는 서약문 봉헌
과학문명과 신조어의 원산지 미국은 교회를 통해 불완전한 세기말적 혼란을 넘어 희망의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 「J2K」(Great Jubilee 2000), 이는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미국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조어이다. 온 세상이 컴퓨터의 2000년도 인식오류 문제, 이른바 「Y2K」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동안 미국교회는 「J2K」라는 단어를 내걸고 조용하고도 차분히 대희년을 준비해 왔다.

「Y2K」가 혼란과 무질서와 불확실한 두려움으로 상징된다면 「J2K」는 새로운 희망, 나눔과 해방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비전을 상징한다. 즉 미국교회는 어두움을 넘어 빛의 세계로, 물질주의에서 복음중심으로 「새로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 교구를 훑어보아도 「특별한 무엇」이 없이 차분하기만 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을 목전에 두고 상업성이 난무하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대비되는 미국교회의 독특한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불과 2000년을 20여일 앞둔 현재, 미국의 기업들은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 인터넷 등 온갖 종류의 매체를 통해 세기말을 강조하며 수요 창출을 위한 갖가지 광고를 쏟아 붓고 있다. 또한 그러한 기업의 상업성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우려한 식자층에서는 맹목적인 현대인들에게 21세기는 2000년 1월 1일에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물론 기업인들에게는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지나친 상업성에 경고 아닌 경고도 겸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에 대한 한 실례는 미국교회가 왜 대희년을 맞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는지 느낄 수 있는 맛배기이다.

'J2K' 즉 2000년 대희년은 미국교회에 있어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를 대변하는 미국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변화는 물질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영적인 것으로의 변화이다. 이와 더불어 복음적 나눔을 통한 상업주의의 극복이며 이는 미국 교회의 최대 과제이자 가장 우선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현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하여 물질주의와 상업주의를 극복하여 새로운 영적인 삶으로의 전향이라는 2000년 대희년의 커다란 숙제를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복음 중심주의,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나눔의 삶 구현을 지향하고 있는 미국교회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 가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브리스카와 아퀼라」 가정을 구현함으로써 상실된 가정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한다. 가족 중심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정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곧바로 세상의 구원과 복음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로가 데살로니카와 아테네를 떠나 고린토에서 활동할 때 브리스카와 아퀼라 부부는 자신들의 집이 선교와 자선의 거점이 되게 했다. 또한 이들 부부는 에페소에서도 자신의 집이 그리스도의 자선을 실천하고 선교하는 거점이 되었으며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교리를 가르치기도 했다(1고린16, 19 로마 16, 3~5).

미국교회는 가정이 날로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 하에서 브리스카와 아퀼라와 같은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가정의 모범을 현대에 구현함으로써 구원의 시발점인 가정을 복원하고 세상을 복음화하고자 첫 단추를 꿰고 있다. 또한 2000년 대희년에 탄생하실 구세주를 손꼽아 기다리는 1999년 대림 첫 주일을 보낸 미국교회는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이 우리들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루가 4, 18) 가져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기쁜소식의 전달자로서 신자들이 거듭나도록 돕고 있다.

대희년의 기쁨과 의미를 함축하는 루가 복음 4장 18절을 토대로 미국교회는 새로운 천년기를 맞아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신자들에게 8개항의 실천사항을 제시하여 이에 서약함으로써 삶의 터전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 실천사항은 △보다 나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정기적인 기도 △피조물을 보호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인간 생명을 수호하는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한 더 많은 학습 △종교와 인종, 민족주의, 성(sex), 불가능한 상황 등의 경계를 초월한 접근 △정치적 무대, 상가, 일터, 학교, 가족 생활에 있어 정의로운 삶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와 더 많은 시간과 재능의 나눔 △본국과 해외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더욱 관대한 지원 △평화를 조장하고 하느님의 창조물을 보전하 인간의 존엄성을 진작하고, 인간 생명을 수호하는 공약의 지지 △정의와 평화, 자선을 더욱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격려 등 8개 항목이다.

이러한 실천항목은 「100주년」을 통해 『교회가 지향하는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첫째가는 사랑은 정의에의 증진 속에서 견고해진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정의와 평화와 자선에의 서약은 미국 주교회의 산하 「제3천년 분과위원회」를 비롯한 다른 위원회에서 새로운 천년기에 정의와 평화를 위한 활동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의 기회를 신자들에게 제공하고자 제안한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미국교회는 이러한 정의와 평화와 자선에 대한 신자들의 서약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미사성제임을 감안해 전례를 통해 이러한 서약을 전례화하여 실천력을 드높이고 있다. 우선 강론을 통해 대희년의 의미와 삶에 대한 신자들의 자세를 견고히 하고자 하고 있는 미국교회는 1999년 대림절을 통해 각 본당에서 대희년 서약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 산하 좥제3천년 분과위원회좦는 12월 12일 대림 제3주간을 대희년 서약을 중점 홍보하는 날로 잡았다. 그러나 본당의 여건에 따라 적합하지 않을 경우 2000년 부활대축일 혹은 성령강림대축일을 택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본당의 사정에 따라서는 올해 연중 28주일인 10월 10일과 연중 33주일인 11월 14일을 대희년 서약일로 활용한 본당도 있다.

미국주교회의 「제3천년 분과위원회」는 아울러 대희년 서약을 위한 특별예식 두가지를 마련해놓고 본당에서 전례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정의와 평화 그리고 자선을 위한 대희년 서약은 우리들 각자에게 하나의 표지이며 서약하는 우리들 각자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루가 4, 18) 전하는 그리스도의 소명을 갱신하는 것입니다』라고 사제 혹은 신자 대표가 선창하면 신자들은 『아멘』하고 응답함으써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이러한 신자들의 서약 실천을 돕기 위해 미국 주교회의는 다양한 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하거나 혹은 각종 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참여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제3천년기 및 2천년대희년 사무국」을 들 수 있다. 이 임시 기구는 미국주교회의 제3천년 분과위원회와 미국주교회의 기획분과위원회를 보조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2000년 대희년 행사에 대한 자료와 정보센터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이 기구의 우선적인 정보교환 수단은 「2000년 대희년」이라는 소식지와 웹사이트이다. 또한 「인간개발을 위한 가톨릭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이는 국내 빈곤 해소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미국 주교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자활 교육과 자립기구, 지역관할에서의 지원과 후원을 통해 미국내에서 가난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리고 「Catholic Charities USA」가 있다. 이 기관은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등록된 원조기구이다. 1400개의 지역위원회와 118개 교구 4400개 본당 단체에서 매년 1억여명의 사람들에게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지원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가톨릭구제회(Catholic Relief Service)는 1943년에 설립돼 해외에서 가난한 국가와 빈민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가톨릭구제회는 8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90% 이상이 미국 밖에서 지원되고 있다.

또 미국 가톨릭 세계평화 및 사회개발국은 주교들에게 국내외 중요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대사회 가르침을 제공하여 사회정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현실과 역할을 감안한 미국교회는 아울러 세계 속의 미국의 위상과 걸맞는 역할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7월 15~18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좥대희년 정의 회의좦는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 의회와 국무성, 재무성을 향해 제3세계 국가의 부채탕감을 촉구하는 한편 아동학대와 사형제도 폐지 등 인권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전미 지역에서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좥그리스도께로 문을 열자좦를 주제로 열린 대희년 정의회의는 『정의에로의 길은 언제나 쉽지도 않지만 언제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세계 속의 미국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따라서 미국교회 차원에서 제3세계 국가를 위한 부채탕감과 이자 감면 등의 촉구는 대희년의 성서적 의미를 현대 국제사회에서 구체화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인권 선진국답게 인권문제에 많은 시간이 할애된 「대희년 정의 회의」에는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원저자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죠셉 헬렌 프리진 수녀와 동티모르의 벨로 주교를 비롯한 유명 연사들이 대거 참여해 사형제도 폐지를 비롯해 아동 착취와 테러 등 각종 인권문제 해소를 미국을 통해 전 국제사회에 역설했다.

이렇게 「대희년 정의 회의」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은 미국교회의 활동은 단순히 미국 안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를 이끄는 국제사회의 맏형으로서 미국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점차 국경의 의미마저 사라져 가는 세계의 추세에 걸맞게 인권문제의 선두 주자로서 인류의 선을 위한 공동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쁜소식을,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라는 주님의 소명에 함께 동참하자고.

미주지사=김보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