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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교회가 간다] 아시아 교회 연대 그리고 복음화 향한 대장정 22. 중국 (하) 복음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우재철 기자
입력일 1999-09-12 수정일 1999-09-12 발행일 1999-09-12 제 216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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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복음화에 한국교회 할 일 많을 듯
북한선교를 위한 중국교회의 교량 역할 기대
개신교와 비교해 선교열의 상당히 뒤떨어져
중국측 입장에서 실질적인 지원책 강구해야
주재원 등 교민들 위한 사목적 배려도 필요
『하느님을 찾고 더욱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한국교회는 아시아인들에게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북한과 중국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비롯 기회 있을때마다 한국교회가 북방선교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깨우쳐 주었다.

이것은 세계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복음화율은 고작 3%에 머물러 있는 아시아교회를 향한 교황의 당부로 21세기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와 그 방향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라 볼수 있다. 이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선교의 핵심이랄수 있는 북방선교를 강조해 왔으며 그 복음화의 역할을 지리적,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한국교회에 맡겨 준 것이다.

실제로 이미 선종한 종회덕 주교는 물론이고 부철산 주교, 김페헌 주교등도 중국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도움이 절실함을 강조해 오고 있다. 중국교회의 실력자인 중국 천주교 교무위원회 부주임 유백년씨의 경우 좬앞으로 중국교회가 발전하지 못한다면 중국교회 스스로의 탓도 크지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 한국교회의 잘못도 있을 것좭이라며 중국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희망했다.

선교역량을 중국교회로

이러한 희망과 중요성을 감안하듯 중국과 한국교회는 그간 많지는 않으나 인적교류를 통한 형제교회로서의 우애를 다지며 그 폭을 넓혀 가고 있다. 현재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사제나 수도자, 평신도, 복지단체 등은 상당수를 헤아리고 있다.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 수원교구를 비롯 한국외방선교회에서 유학생등 기타 신분으로 사제를 파견한 상태며 중국 신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10여개 남여 수도회에서는 나환자 요양소의 간호사, 양로원,병원 및 학교운영, 영어 교사등의 신분으로 수도자를 파견, 보이지 않는 선교활동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반대로 열악한 수준인 중국에서의 신학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학생들을 초청해 국내 신학교에서 수학하도록 돕고 있다. 특히 심양교구장 김페헌 주교는 심양교구 신학생들도 한국에서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 줄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요청은 교수요원이 부족해 신학교육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는 중국교회로서는 이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일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신문사 중국 성지순례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함께 방문했던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김수창 신부는 한국교회의 모교회이기도 한 중국교회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른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각국으로 흩어져 선교 역량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중국교회에 한국교회의 선교의지를 집중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몽골지역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국가에게 그 선교의 책임이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 자체의 복음화는 물론이고 장차 우리가 이뤄내야할 최대의 숙원인 북한선교를 위해서도 당연하고도 절실한 지적이 아닐수 없다.

북한선교를 위한 발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굳게 닫힌 북한의 빗장을 풀기가 쉽지는 않으나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통해 복음을 전파해 나간다면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찾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간의 종교적 교류는 활발하지 않으나 지난 91년도에는 조선천주교인협회 회원들이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은 상해의 김가항성당을 순례한바 있다. 그들은 중국신학교에서 북한의 성직자를 양성해 줄수 있는지를 문의한바 있고 중국교회측은 이때 평양교구장 서리가 김수환추기경임을 일깨워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중국교회의 종회덕 주교와 류백년씨 등 7명의 인사가 92년에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그때 북한 부총리를 만나 천주교 교리의 특성과 천주교가 인민에 미칠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로 볼때 중국교회는 우리가 직접 할수 없는 일들을 대신해 줄수 있는 신뢰를 북한 천주교 관계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교회를 재건하는 노력을 중국교회를 통한 우회전략으로 풀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교민위한 사목대책 시급

중국에는 약 2백여만명의 조선족이 동북3성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으나 그들을 한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단 금물이다. 중국정부는 이들을 위해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펴고 있고 이같은 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소수민족에 의한 불협화음이 거의 없는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 동포니까」라는 식으로 조선족만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펼치기 보다는 중국전체를 향한 복음화 전략, 우호전략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해 있는 상자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을 위해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양시에 거주하는 한 상사주재원의 경우 『약 2만여명의 한국인들이 와 있으며 그중 8%정도인 1600명 정도는 가톨릭 신자』라며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곳 신자들은 인근의 중국성당 주일미사에 몇번 참례해 보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고 신자로서 친교를 느끼지 못해 곧 성당과 멀어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외국인이 중국에 들어와 사목하기란 여러 여건상 제약이 많고 쉽지않다. 반면 개신교의 경우 이미 수천개의 교회를 만들어 나름대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할때 우리의 자세는 너무 소극적인 접근이 아닐까?

개신교에서는 수천개 교회가 무분별하게 진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드시 그런 방법을 본받을 필요는 없으나 그들의 대중국 선교 열의를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교회의 실천적 노력 중요

중국이 변화되고 있듯이 중국교회도 크게 변모하고 있다. 세계 복음화의 관건이 중국복음화에 달려있다고 할 만큼 중국의 복음화는 절대절명의 과제일 수 밖에 없다. 교황은 그 역할을 한국교회에 맡겨 두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숙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풀어가야 한다. 그런점에서 우리는 복음화를 위한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차질없이 북한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몇가지 염두에 두어야할 일들이 있다고 본다. 그 첫째는 조선족을 북방선교의 제1차적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며 둘째가 지하교회와 애국회중 어느 일방과의 접촉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우선의 입장보다는 좥모든 이가 하느님안에서 한형제 자매좦라는 그리스도교의 보편원리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지난 세기에 이뤄졌던 선교정책에서 일부 선교사들이 피선교국의 입장에서 선교의 방향을 취하지 못하고 선교국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선교를 진행시킴으로써 여러 문제가 발생했었다는 서울대교구 맹제영 신부의 지적을 우리는 명심해 봐야 한다. 그것을 염두에 둘때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복음자세가 분명해질 것이다. 아울러 1801년 순교한 주문모 신부의 시복시성운동을 위해 한중 양국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방법도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복운동이 연합해 전개된다면 한국교회와 중국교회와의 유대는 물론 교황청에 대한 중국교회 신도들의 인식도 새로와질 것이다.

이제 중국교회를 위한 실천적 과제만이 남겨져 있다. 말로만이 아닌 실제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중국복음화에 일정부문 기여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국법상 선교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인력 파견등은 신중히 하되 이를 측면에서 지원할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될 것이다. 신구약 성서 합본 간행사업, 성당복구 사업, 북경의 전국 신학교(신철학원) 건물신축 등 사제양성을 위한 각종 지원. 의료, 복지시설 운영을 위한 지원 같은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교회를 북한선교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중국교회 그 자체에 관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 기도가 요청된다는 점이다. 세계인구의 22%에 달하는 13억인구를 복음화하는 일. 그 역할을 맡은 한국교회야 말로 이세상에서 가장 값진 사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민족이 아닐까?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