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양자 수녀의 중국 가톨릭 교회사] (37) 경자(庚子)교난 4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입력일 1999-09-12 수정일 1999-09-12 발행일 1999-09-12 제 216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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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에서 중국인까지 10등급으로 나눠 살해
동당(東堂)에 방화

조정에서 의화단을 불러들여 20여만 명의 의화단이 철로를 파괴하고 전선줄을 끊고 열차역에 방화하고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6월 11일에는 일본공사관의 스기야마 서기관을 살해하고 6월 20일에는 독일 케틀러 공사를 살해하였다. 북경 거리는 테러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양 남자 1명을 살해한 자는 은전 50냥을, 서양 여자를 살해한 자는 은전 40냥을, 서양 어린이를 살해한 자는 은전 30냥을 상금으로 받았다. 서양 사람, 선교사, 교인, 서양 사람과 사귀는 중국인, 서양 언어에 능숙한 중국인에 이르기까지 10등급으로 나누어 모두 살해하였다. 의화단은 서양 상품을 보면 분노를 참지 못하여 꼭 부수었다고 한다.

5월 31일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6개국은 모두 군대를 북경에 불러들여 공사관을 보호토록 하였다. 그러나 북경에 진주하던 군대는 고립 상태에 빠졌다. 동당은 루이지 부그리오 신부와 가브리엘 데 마갈헨즈 신부가 창건하였다. 궁중에서 두 신부에게 택지로 하사하여 1653년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는데 1720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다음해 성당을 신축하였는데 1807년 실화로 화재가 나서 다시 신축 허가를 냈으나 허락이 내려지기는커녕 정부에 몰수당했다. 1860년 교회에서 동당을 환수하여 1884년 델라브라스 주교가 로마식으로 성당을 건립하였다. 동당 부설 학교가 있었는데 요셉회 수녀가 관리하였다.

당시 동당 주임은 라자리스트회 가리제스 신부이고, 보좌는 이유림(李儒林) 신부였다. 가리제스 신부는 성경의 『그들은 육신을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일 수 없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교우들에게 순교를 준비시켰다. 동당에서 학교를 관리하는 수녀는 3명인데 남당에 있는 원장 문록미(雯祿美) 수녀가 동당 수녀들을 도와주기 위해 왔었다. 원장 수녀는 기도를 하고 감실에서 성체를 꺼내 수녀들에게 영해주고 순교를 준비시켰다.

의화단은 제일 먼저 6월 13일 저녁 7시 동당을 공격하였다. 성당에 인화물을 끼얹고 방화를 하고 또 학교에도 교우들이 모여 있었는데 의화단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가진 것을 전부 약탈하였다. 어떤 사람이 가리제스 신부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 『양귀자(洋鬼子)다! 저 자를 죽여라!』하고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몰려가 가리제스 신부를 살해하였다.

수녀들은 교우들과 남당으로 가다가 도중에 의화단을 만나 원장 문록미 수녀가 먼저 살해되고 수녀 3명은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었는데 의화단이 칼로 수녀들을 찔러 전부 살해했다. 동당에는 주로 포르투갈 출신의 라자리스트회 회원들이 거주하였다.

서당(西堂)에 방화

서당은 북경의 4개 성당 중에 가장 늦게 건립되었다. 음악가인 라자리스트회 페드리니 신부가 1725년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1811년 가경제가 성당을 훼멸하고 몰수하였는데 1860년 교회에 반환되었다. 마르티 수사가 공사 감독을 하여 1867년 새 성전이 건립되었다. 도레 신부가 1898년 12월 28일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도레 신부는 상황이 점점 위태로워지자 전도원들과 교우 대표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하였다. 제의는 잘 부패하므로 땅에 묻지 않고 교회 중요 문서와 중요 장부들은 땅에 묻었다. 교우 한 사람이 찾아와 도레 신부에게 『신부님 위험합니다. 총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도레 신부에게는 총이 3자루나 있었다. 도레 신부가 대답하기를 『총을 무엇에 쓰게요? 만일에 내가 살인을 한다면 그게 무슨 공로가 되는 일이겠습니까? 제가 죽겠습니다』 도레 신부는 6월 14일 새벽 6시 미사를 봉헌하였다.

마당에 5000여명의 교우와 피난민이 몰려들어 왔다. 의화단이 몰려와 인화물을 끼얹고 방화를 하였다. 도레 신부는 종루로 가서 타종을 하는데 의화단이 와서 칼로 도레 신부의 머리를 찔러 살해하였다. 당시 목격자가 없어 5000여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당은 이태리 선교사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