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양자 수녀의 중국 가톨릭 교회사] (34) 경자(庚子)교난 1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입력일 1999-08-08 수정일 1999-08-08 발행일 1999-08-08 제 2163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청일전쟁 패배로 제국주의 침략 봇물
의화단은 교회 파괴 선교사 살해 자행
의화단의 폭동

의화단 운동의 서막이 된 3대 교난은 「대족교난」 「거야교난」 「관현교난」이며 「순청멸양(順淸滅洋)」 「부청멸양(扶淸滅洋)」 구호는 의화단 운동에 지도사상을 제공하였다. 대족, 거야, 관현 반양교투쟁은 전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각지에서 교난이 끊이지 않고 폭발하게 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은 점차 본격화 하였다. 서양 열강들은 항구를 조차하고 또한 자신의 세력 범위를 나누는데 광분하여 중국 각지의 철로 부설권을 쟁탈하였으며, 철로 주변의 광산을 침탈하고, 도처에서 인민들의 토지를 불법 점유하고 묘와 가옥을 파괴하였다. 철도 부설로 말미암아 그 근방의 토지와 가옥이 모두 파괴되어 수많은 농민이 생존할 수없게 되었다. 열강은 중국으로 대량의 상품을 수출하고 많은 탄광과 공장을 건설하였으며 자본 수출을 함으로써 자급자족적 자연경제는 파괴되었고 상품시장은 더욱 확대되었다.

교회는 직예성(直隸省)과 산동성 두 성의 주 현에 두루 퍼져있었다. 직예성에는 크고 작은 교회가 2천여 개 있었으며 산동성에는 1300여개의 교회와 분소가 있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서양선교사가 약 300여명 되었으며 교인이 약 8만여명 되었다.

의화단은 산동성에서 일어났는데 산동성은 원래 민풍이 억세고 사나워 각종의 무술 단체가 민간에 내려오고 있었다. 1898년 산동 순무 장여매(張汝梅)가 상주하기를 「직예성과 산동성 교계(交界) 각 현에서 인민이 무술을 배우고 단체를 창립하여 이름을 의화(義和)라 한다」고 하였다.

중국에서 반양교운동이 심하게 일어나면서 무술 단체들도 계속 창끝을 그리스도교로 향하였다. 의화단이 산동성에서 발전해 나갈 때 이미 직예성 동남부 경주(景州) 오교(吳橋), 염산(鹽山), 남궁(南宮) 등지의 의화단은 도장을 설치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의화단 단원들은 자신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병이라 칭하였으며 권법(拳法)과 봉술(棒術)을 익히고 주문을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의화단은 산동성에서 순무 육현(毓賢)의 장려로 교회를 파괴하고 선교사들과 교인을 살해하였다.

조정에서 원세개(袁世凱)를 산동성 순무로 임명하여 의화단의 난동을 진압토록 하였다. 원세개는 그가 편성한 신식 육군을 이끌고 부임하여 의화단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경자년(1900년) 봄 원세개에게 쫓긴 의화단의 주력은 직예성(현 하북성)에 들어가 이 지역의 의화단과 합류하여 2월부터 6월에 걸쳐 천진을 점령하였고 각지에서 교회를 파괴하고 외국 주재기관을 파괴하였다. 의화단은 원래 백련교의 잔당으로 반청(反淸) 분자들이었으나 외국에 대한 원한으로 좥부청멸양좦의 구호를 부르짖게 되었다. 의화단이 직예성으로 도망갔을 때 직예성 총독 유록(裕祿)은 이들의 사설(邪說)을 믿고 그 두목을 조정에 천거하였다.

무자비한 테러

서태후의 측근들은 의화단의 진격 상황을 지켜보고 이들의 힘을 배외운동에 이용하려하였다. 서태후도 이들을 불러들여 1900년 6월 의화단은 마침내 북경으로 들어왔다. 서태후는 47년간 전 중국을 지배하였으며 자신이 빅토리아 여왕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서태후는 1900년 6월 21일 각 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의화단에 명하여 공사관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또한 각 성에 명령하여 서양인을 수색하여 살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청조는 총포를 지급하여 의화단의 전투력을 증강시키려 하지않아 의화단은 원시적인 칼과 창을 갖고 6만명의 8개국 연합군의 포화에 맞서게 되었다. 그리고 연합군이 북경을 함락시키자 다시 비적 소탕의 칙유를 발하여 청조 관군에게 외국 침략군과 협력하여 의화단을 섬멸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의화단은 배신당하고 매도 당했던 것이다.

북경에 들어온 의화단은 20만명에 이르렀으며 동복상(董福祥)의 정부군과 합류해 북경에서 외국인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하고 천주교와 개신교 서양선교사들과 교인을 살해하고 교회와 교회에서 운영하는 자선사업 기관을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북경 거리는 폭동과 테러가 난무하였다. 의화단 운동은 북경과 천진 지역에서 신속하고 맹렬하게 발전하여 인민 대중의 반제국주의 폭동이 전국을 휩쓸도록하였다. 그 중에서 산서, 내몽고, 동북 3성 북방지역에서 의화단에 의한 반제국주의 투쟁이 더욱 결렬하게 일어났다.

서양자 수녀(한국 순교복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