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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성요셉성월」 특집] 성 요셉 바로 알기 (2)

이주연 기자
입력일 1999-03-21 수정일 1999-03-21 발행일 1999-03-21 제 214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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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들어 성요셉 공경 활성화... 전 교회 주보 
1947년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로마에 성요셉 축일이 받아들여져
성요셉에 대한 신심이 고양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에 들어오면서 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중세기에 들어오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좀더 알고자 하는 교회의 열망들이 성요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온 데서 비롯됐다.

교회학자들은 특히 교회사적으로 볼때 13세기는 교회의 교의가 견고하게 확립되었던 시기였던 만큼 성요셉 신심 발전의 토대도 그만큼 든든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성요셉 공경 이집트에서 시작 추정

성요셉에 대한 공경은 이집트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성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이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았다고는 알려지고 있지만 교회안에서의 공식 신심은 상대적으로 다소 늦은 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성요셉 신심의 활성화가 13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성요셉의 역할이 성모의 역할만큼 명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의적으로 확인되어 전례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의견이 크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이 성요셉 공경에 기여한 성인

학자들은 이 시기 이후 개인 공동체들의 성요셉 신심이 만족할만큼 발전하면서 지역교회 특히 가르멜회와 프란치스코회 등에서 성요셉 축일을 지내게 됐다고 전한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요한 제르송 등이 15~16세기 성요셉 공경에 기여한 대표적인 분들이다.

서방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종 수도회가 1324년 3월 19일을 성요셉 대축일로 지낸 수도회다. 그후 1479년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로마에 성요셉 축일이 받아들여졌고 이로써 성요셉축일이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1555년 이후 성요셉은 멕시코 주보성인으로 선언되었고 1624년 3월 19일에 캐나다는 성요셉에게 봉헌됐다. 페루 보헤미아의 봉헌도 1655년 이루어진다.

1678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 중국의 보호자로 공식 인가

1678년 8월 17일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는 성요셉을 중국의 보호자로 공식 인가하였다. 성요셉 호칭기도에서 성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고 있는데 교황 비오9세는 12월 8일 회칙 '퀘맛 모둠 데우스(Quemad modum Deus)'를 반포하여 성요셉을 성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교황 비오9세는 이 회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3개의 유명 대성당인 '성베드로대성당' '성모마리아대성당' '라떼란의 성요한 대성당'에서 동시 반포할 것을 원하셨고 그 날짜는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대축일을 택해 의미를 고양시켰다.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

20세기에 이르러 성요셉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로 정해졌는데 이는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디비니 레뎀토리스' (Divini Redemtoris, 1937년)를 통해서였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노동자 성요셉의 축일로 제정하였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