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한평생 기도하면서 살아요”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00-11-26 수정일 2000-11-26 발행일 2000-11-26 제 222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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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 일곱의 조세준(실베스텔 조) 할아버지.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며 살고 있다. 죽은 이를 위해 은인들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성무일도, 일곱시 미사참례, 묵주기도를 올리고 난 다음 정오에 점심을 먹는다.

눈도 안 보이고 거동도 불편해 남들처럼 밖에 나가 일을 할 수도 없기에 그저 방안에 앉아 묵묵히 묵주알을 돌린다. 때때로 산기슭 에 있는 납골당으로 찾아가 먼저간 친구들의 명복을 빌며 한때를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성당에 앉아 성체조배를 한 다음 저녁을 먹고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나서야 자유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그의 삶은 기도로 채워진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질병에 걸려 온갖 고통 속에서 삶을 비관해 왔다는 조 실베스텔 할아버지. 지금 경기도 의왕시 몰압산 기슭에 자리잡은 성 나자로 마을에서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가고 있는 그는 요즘에서야 살맛이 난다고 한다.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칠순의 할아버지는 행복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험난한 세태 속에서 방황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늘 천당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지난 18일부터 이틀동안 성 나자로마을에서 라자로돕기회 30주년 행사와 피정을 하면서 나환우들을 대표해 조세준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젊었을 때 제 인생은 저주받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6.25 전쟁의 와중에서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는 가운데 천형이라는 문둥병에 걸린 몸뚱이를 보며 하느님은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을까? 그러면서 나의 처지를 주위 사람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온통 마음엔 미움 뿐 이었지요』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차가운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볼때는 그렇게 싸늘 하던 세상이 언제부터인가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던 순간 부터 즐거워지더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도가 그렇게 신통력을 갖고 있는 줄 몰랐어요. 우리를 도와주는 모든 은인들이 찾아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낸다고 말할 때면 기도에 열을 올리게 되고 힘이 나요" 조 할아버지의 얘기를 확인해주는 듯 해외에서 온 교포들의 에피소드는 더욱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라자로돕기회원으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홍 베드로 형제는 낯선 땅에서 어느날 원인 모를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생사를 헤매던 그는 고국을 찾았고 순천향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택한 치료법은 좀 무모했다. 방사선치료니 키모테라피니 하는 암치료를 받지 않고 오직 기도의 힘만 믿은 것이다. 그리고 넉달만에 거짓말처럼 완치돼 이날 우리 앞에 나타나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호주에서 온 예순여덟의 엘리자벳 할머니도 장암을 극복하며 호주의 700여명이나 되는 회원들을 관리해온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기도 속에 기적은 있노라며 열변을 토하는 순간, 성당 안의 나환우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정 베드로 형제는 언제 병마와 싸웠느냐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유럽 지역의 라자로 돕기회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우리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제30회 라자로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마치 행복한 전염병 에 걸린 듯 축복의 인사를 나누며 내내 흐뭇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치유의 은사 속에서 나자로 마을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아무 것도 모르고 주님을 무작정 따라 나선지 40여년이 지나서야 나는 어렴풋이 그분의 깊은 속뜻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서 속에 나오는 종기투성이 거지 이름인 라자로를 따서 만든 나환우들의 보금자리 나자로마을.

30년전 움막 속에서 초라하게 시작된 이곳을 통해 하느님은 조용히 말씀 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께 사랑받는자, 다시 살아날 희망이 있는 자를 가리키는 '라자로' 라는 말처럼 이 불우하고 낮은 자들을 통해 상처 속 에서 꽃피는 사랑을 보여주고 계신 하느님. 은근한 기도 속에서 기적을 행하는 분, 우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주님께 난 오늘도 기도드린다.

『우리를 위해, 우리 죄 때문에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저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처럼 앞으로 조용히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옹졸하게 자만하며 살아가는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