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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여는 특별기획] 20세기의 끝, 21세기의 시작 - 환경 (상) 21세기의 생활 환경

신정식 기자
입력일 2000-09-24 수정일 2000-09-24 발행일 2000-09-24 제 221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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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무서워 아이 못낳겠다는 세상
숨쉬고 먹고 마시고…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현실
회복될 전망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
『하룻밤 자고 났는데 벌써 목이 따가울 정도로 서울은 먼지가 많고 공기도 매우 나쁜 것 같습니다』지난 8월 15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 북한 사람들에게 다음날 아침 기자들이 서울에 대한 인상을 묻자 나온 대답이다. 그들은 시민들의 친절에 고마워하고 서울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도 『공기가 너무 탁하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늘을 뒤덮은 매연을 보면서 『북한의 공장은 대개 외곽지역에 있어 공기가 참 깨끗한데 서울에는 공장이 많은가』라며 의아해 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잠시나마 서울의 공기가 50여 년만의 가족 상봉이라는 흥분과 감격의 소용돌이를 여지없이 끊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생명 위협하는 먹거리

최근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납 조각이 들어있는 중국산 꽃게와 복어가 시중에 유통되고 우리가 즐겨 먹는 묵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 이와함께 화공약품인 황산을 넣은 식용유가 유통돼 참기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소식과 외국산 복어와 아귀에 물을 먹이고 홍어 뱃속에는 돌덩이가 가득 들었으며, 쇳가루 섞인 고춧가루 소식이 일간지 한 면을 다 채우기도 했다. 이밖에도 농약에 절인 농산물과 유전자 변형 수입 농산물이 나돌고 있다. 유럽산 육류에서는 다이옥신이, 제과류와 라면 등의 겉봉에서는 유독물질인 톨루엔이 나오고 있으며 불고기용 황동불판에서는 수년째 맹독성 납성분이 검출되고 있지 않는가. 댐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강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는가 싶더니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비만오면 분뇨와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실정이다. 염색공장에서 발생한 폐수 2000여t이 한강으로 불법방류 되기도 했으며, 대전시에서는 정화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생활하수 62만t을 금강에 방류했다. 최근에는 대전 충청 지역 4백만 주민의 식수원인 대청호 전역에 조류(藻類)경보가 발령됐다. 조류는 정수과정에서 여과필터를 막아 정수를 방해하고 수돗물에서 곰팡이 냄새 등 악취가 나는 요인이 된다. 일정량 이상의 독성물질이 검출될 경우 급수를 중단해야 한다.

쌓여만 가는 쓰레기

지하수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수돗물에서는 바이러스가 발견됐으며 수돗물 불소화의 안전성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에 가정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버리는 생활쓰레기가 절반 수준으로 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환경백서」(99년)에 따르면 「98년 1인당 하루 생활쓰레기 가 0.96㎏으로 감소, 영국(0.96㎏) 및 독일(0.99㎏)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에서는 정확한 조사, 집계방식 등을 문제삼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아직도 대도시 빈민가에는 쓰레기 태우는 연기가 자욱할 때가 종종 목격된다. 농어촌 쓰레기는 거의 대부분 노천에서 무단 소각되면서 오히려 대기오염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얼마전에는 인천지역 주둔 군부대가 야산에 생활폐기물 수만t을 불법 매립해 말썽을 빚었다.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에 모기가 들끓고 썩은 냄새가 진동해 인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전국에서 발생하는 음식쓰레기가 하루에 1만2000t에 이르고 있다. 매립이 금지되는 2005년부터는 어떻게 처리 될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도시 농촌할 것 없이 전국적으로 「러브호텔」이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8월 23일 일산 지역 주민 1500여명이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2개의 초등학교와 주거밀집지역인 아파트 인근에 12개의 러브호텔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알고자하는 소송이다. 생활·교통·교육환경 등에 대한 사전 계획없이 마구잡 이식으로 건물을 짓는 「난(亂) 개발」도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공시설과 도로기반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서는 건물로 인해 신규 입주민은 물론 이미 살고 있던 주민들마저 큰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디지털 혁명의 부작용

요즘은 마치 컴퓨터나 휴대폰 없이는 살수 없는 세상이 온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혁명에 대한 찬사 뒤에 가려진 역기능은 이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 정보가 무한정 유출되고 이름마저 도용당해 악용되고 있다. 음란 사이트나 인터넷 성인방송은 청소년들에게 비뚤어진 성관념을 심어준다. 컴퓨터에 중독된 사람들은 가상과 현실을 혼돈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컴퓨터 오락.비디오.TV 등에 빠진 청소년들 중 '학습장애아'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근에는 30.40대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민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경제적 안정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는 이유는 보다 인간다운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씨랜드 참사로 자식을 잃은 전 국가대표가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간 이유도 하나 남은 자식에게 좀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숨쉬고(대기) 먹고(음식) 마시고(물) 배출하고(쓰레기) 보고(매체) 배우고(교육) 생활하는 것(주거), 이밖에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21세기 환경들이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섬뜩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을 두 눈 뜨고 빤히 보면서 숨쉬고 먹고 마시고 교육받고 살아야한다는 사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살려고 먹는 것인지 죽을려고 먹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급기야, 환경이 무서워 아이 갖기를 포기한 부부 얘기가 본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결혼한지 5년이 넘은 이들 부부는 지금도 심각한 환경문제가 앞으로 좋아질 전망이 없고 사람 살 세상이 못되겠기에 자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된 세상에서 살라고 무책임하게 자식을 낳는 것은 잔인한 노릇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환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신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