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아! 성모님, 아름다운 우리 어머니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00-12-17 수정일 2000-12-17 발행일 2000-12-17 제 223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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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최전방 「까치봉 기도의 집」. 하얗게 눈내리는 차가운 진지 위에 우리를 위해 기도 하시는 아름다운 성모님이 축성되었다. 2000년 대희년 12월 10일 오전 10시30분.

남북통일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이산가족, 장애인, 나환우 그리고 일선 장병들이 6.25 반세기를 기리며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갈구하는 통일 동산 현장에 복되신 마리아 성모님이 우뚝섰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김옥균 주교와 성 나자로 마을 원장 김화태 신부 등의 주례로 진행된 이날 축성식에서 서울대교구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 김병일 지도신부(성산동주임)는 지난 10년 동안 이곳 휴전선 최전방 꼭대기에 세운 「까치봉 기도의 집」에서 기도 끝에 이룩한 꿈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김병일 신부는 6.25때 헤어졌던 어머니를 여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1950년 1.4후퇴때. 황해도 사리원본당 복사인 15세 소년이었던 김병일 신부는 유엔군을 따라 홀로 남하하면서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묵주를 받아들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헤어진 채 반세기를 보냈다.

그리고는 자나깨나 그 어머니를 꼭 만날 그날을 손꼽으며 성모님께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고향과 가장 가까운 휴전선 남쪽 「까치봉」산상에서 열절한 기도를 올린 다음날 김 신부는 성산동 본당 사제관으로 걸려온 낯설은 전화를 받았다.

『김병일 신부님이세요? 저는 ○○교회 목사인데요. 제가 그곳에 갔다가 신부님 자당께서 생존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좀 전해 드릴까해서요』두 사람은 곧 만났다.

6.25 전쟁통에 어머니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방황하다 결국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겠다던 삼촌이 다행히 연길까지 빠져나와 김 신부와 눈물겨운 50년의 역정을 줄줄이 외우는 것이었다.

그 삼촌이 다시 북한땅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김병일 소년이 『결국 주님의 뜻대로 사제가 되어 있더라』는 소식을 전하자 얼마 후 팔순 노모는 그동안 버티던 힘을 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성당 안에 빈소를 차려놓고 영결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노사제는 줄곧 비통한 가슴을 억제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목메인 소리로 『우리 모두 성모님께 열절히 매달리며 기도하자』는 말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토로했다.

12월 10일 「까치봉 기도의 집」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모님을 모시게 된 연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이었던 이관진 형제는 성모상 건립기금으로 1000만원을 쾌척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김병일 소년의 애절한 사모곡을 이렇게 울리게 해주었다.

1994년 10월 15일, 김옥균 주교와 최창무 대주교는 반세기 분단의 아픔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고 있ㄴ는 김 신부가 세운 「까치봉 기도의 집」을 축성하면서 언젠가 성모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것이 바로 북한에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는 놀라운 소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민족복음화를 위해 줄기찬 기도를 올리는 동안 신부님은 임진강 바로 건너편 고향을 바라보는 통일동산의 종교부지 2300평을 14억5000만원에 사들여 '통일기원센터'를 세울 꿈을 키우기도 했다. 몇사람 안되는 소공동체의 기도운동이 이처럼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된 것은 확실히 기적이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줄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 19).

지난달 제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단을 이끌고 평양에 갔을 때, 나는 장충성당을찾아가 그곳 총회장 차성근 형제와 함께 기도하며 까치봉의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그날 안개낀 평양의 하늘에서는 성모님을 에워싼 천사들의 노래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짙은 안개 속을 뚫고 김 신부의 어머니가 손짓하며 미소짓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